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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까지 기뻐할까요?
신한준 목사(토론토 한인장로교회) 부활절 이후 성령강림절까지 이어지는 50일의 기간을 우리 교회는 ‘기쁨의 50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어느덧 4주째 기쁨을 주제로 설교를 이어가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고단한 이민 생활과 팍팍한 현실 속에서, 우리가 이렇게까지 기뻐해도 괜찮은 것일까?’ 사실 ‘기쁨의 50일’이라는 절기는 어떤 이들에게는 생소한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 기간은 초대교회 때부터 지켜져 온, 기독교 역사상 가장 오래된 절기 중 하나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40일의 사순절보다 더 긴 50일 동안, 금식을 금하고 무릎 꿇는 회개 대신 서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죽음을 이긴 생명과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이 기쁨의 신비를 나누기 위해 최근 설교 중 기독교인 남매 듀오 ‘악뮤(AKMU)’의 노래 하나를 소개한 바 있습니다. “기쁨 뒤에 슬픔이 오는 건 아름다운 마음이야… 너의 웃음과 조화로운 너의 눈물”이라
May 81 min read


달팽이관
황로사 작가 의사는 귀에 문제가 생긴 것 같다고 했다. 얼마 전 갑자기 생긴 어지럼증 때문에 무척 당황스러웠다. 침대에 눕는 순간, 천장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더니 시속 백 킬로미터의 느낌으로 방 전체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침대에서 떨어질 것 같아 소리를 지르며 침대를 꽉 붙잡았다.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세상도 나도 돌고 있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정신 못 차릴 만큼 돈다고 느끼는 것도 나에게는 현실이었다. 그 후 한 동안 균형을 잡을 수 없는 그 증상이 다시 올까 봐 겁이 나서 살살 걷고 위를 쳐다볼 때는 뭐라도 붙잡으며 지내야 했다. 손가락 마디 반 만한 작은 것 하나가 내 몸 전체를, 중심을 못 잡게 하고 쥐락펴락한다고 생각하니 왜 갑자기 그 친구가 떠오르는 걸까…! 이민 생활 중에 추억을 공유한 지인을 만나는 것은 나른한 일상을 깨워주는 즐거움이다. 직장에 휴가를 내고 서울에서 방문한 그녀와 같이 하루를 보내기로 계획을 세웠다. 육십 킬로
May 83 min read


흐르는 시간 보다 드려지는 시간으로…
임함남 목사(베다니 침례교회) 시간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 것은 교회 사역을 하면서부터였다. 이전에는 시간이 그저 흘러가는 것이라 여겼다. 빠르게 지나가면 아쉽고, 느리게 가면 답답한 것—그 정도의 의미였다. 그런데 사역 속에서 만난 시간은 내가 알던 시간과는 조금 달랐다. 같은 시간, 같은 장소를 향해 가는데도 어떤 날은 내가 쫓기듯 뛰어가고 있었고, 어떤 날은 이미 도착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시간은 똑같이 주어졌는데 왜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까.” 교회 안에서의 시간은 단순한 흐름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드러내는 도구였다. 누군가는 항상 먼저와서 보이지 않는 준비를 하고 있었고, 누군가는 정시에 맞춰 들어왔으며, 또 누군가는 늘 조금 늦게 왔다. 처음에는 그것을 그저 각자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크게 문제 될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 차이는 작은 불
May 82 min read


잡초는 없습니다
장성환 목사(런던한인장로교회) 초록색 잔디밭에 피어 있는 노란색 민들레가 아름다운 계절입니다. 그 색의 어울림이 너무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초록의 깨끗한 잔디밭을 원하는 이들에게 민들레는 그들의 잔디밭의 미관을 해치는 성가신 잡초에 불과합니다. 하지만 정작 집 주인에게 미움 받는 그 민들레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아주 귀한 대접을 받아 온 대표적인 약초입니다. 특히 간을 살리고, 염증을 다스려 죽어가는 생명을 붙드는 귀한 약이 되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눈에 거슬리면 다 잡초라고 부른다. 자기들한테 쓸모가 있으면 곡식이고, 나물이고, 약초라고 부르면서, 어디에 쓰이는지 모르면 그저 잡초라고 뭉뚱그려 부른다. 하지만, 이 세상에 쓸모없는 생명은 하나도 없다. 윤구병 선생의 ‘잡초는 없다’에 나오는 글귀입니다. 약초와 잡초를 구분 짓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의 표현임에 분명합니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은 단 세 줄의 짧은 시지만, 깊은 생각
May 81 min read


“기독교인보다 더 기독교적인”
장천득 목사 (밴쿠버 동산교회, 컬럼니스트) 선교팀을 이끌고 와서 원주민을 마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처음 캐나다에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상을 갖게 마련이다. 캐나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살기좋은 나라, 기독교 선진국,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교적 열정이 있기도 했지만 설마했다. 그래도 캐나다인데…. 캐나다에 대한 선교적 상상력은 한방에 산산조각 났다. 처음 방문한 타클라랜딩, 타체 리저브는 밴쿠버에서 차로 13시간 들어가는 고립된 오지였다. 대부분의 리저브는 도로가 포장되지도 않은 곳에 소수의 원주민들이 고립되어 살아간다. 원주민 리저브는 사건사고, 자살과 중독등이 끊이지 않는다. 한번 리저브를 방문하면 단번에 알게 된다. 좁디좁은 비포장 도로에 인가도 없이 집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을 한 무면허 운전자들이 가끔 비좁은 비포장도로에서 위험천만한 운전을 한다. 인도의 뱅갈로, 인도네시아, 태국의 카렌
May 23 min read


할 수 있을 때, 잘하자!
최정근 목사(주님마음 캡스톤 교회) 장례식장에 가보면 그분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대강 가늠해 보게 됩니다. 평소에 많은 사랑과 베품 그리고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희생의 길을 살아온 인생은 많은 이들이 아쉬움의 작별을 합니다. 하지만 욕심과 이기심으로 산 인생은 마지막 가는 길도 삭막합니다. 비록 육신은 차갑게 식어도 평소 생전의 처신에 따라 장례식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 보입니다. 그런데 자식들과 가족들의 반응은 조문객들에 비해 조금 다르기도 합니다. 장례를 많이 지도한 장례지도사들은 한결같이 말합니다. 고인의 자식들이 유난히 통곡을 많이 하면 아이러니하게도 대부분 불효한 가정이 많다고 합니다. 반면에 그저 담담하고 차분하게 장례를 치르는 집안은 효심이 가득한 자녀일 확률이 높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부모님 살아계실 때, 행복하게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한 자식들은 비록 아쉬움은 남아도 최선을 다했기에 후회가 없고 통한이 없습니다. 하지만 자기 살
May 22 min read


기도는 주님과 거래가 아닙니다.
양경모 목사(순복음 방주교회)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가슴에 담으십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대화요, 곡조없는 찬양이요, 기도자의 영적 호흡입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감각이 망가지고 민감함이 떨어지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내 욕구를 채우는 도구가 아닙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종처럼 호출하는 도구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종처럼 호출하는 기도는 불신앙의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의 대부분은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기도가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주소서' '저렇게 하여 주소서' 라고 하나님께 명령을 합니다. 믿음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것이 믿음의 기도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어쩌면 하나님을 하인처럼, 아니면 도와주는 분으로서의 개념을 가지고 기도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마치 하인이 주인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 같이 반드시 내가 하는 기도에 답을 해 줘야 하는 것처럼 기도할 때가 많은 것입니다. 진실
May 21 min read


아이는 어른의 아버지
남성덕 목사(캘거리 한인 장로교회) 큰 아이가 어렸을 때 종종 감기에 걸리거나 열이 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울고 있는 아이를 안거나 업고 기도하곤 했다. “하나님, 이 아이의 아픈 것을 저에게 주시고, 아이는 얼른 낫게 해주세요.” 그러면 신기하게도 아이는 곧 잠에 들고 금방 낫기도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도 동일하게 기도했다. 그런데 아이가 네 살 정도 되던 어느 날 내가 많이 아픈 적이 있었다. 약을 먹고 누워서도 좀체 나아지지가 않았다. 아내는 아이들을 데려다가 아픈 아빠를 위해서 기도하자고 했다. 그때 아들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하나님, 아빠의 아픈 것을 저에게 주시고, 아빠는 얼른 낫게 해주세요.”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는 이렇게 말했다. “The Child is father of the Man.” 아이가 어른의 아버지일 수 있을까? 그러나 아이를 통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운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배우고, 배운
May 21 min read


What is the church: church polity
Jonathan Leeman, in Baptist Foundations: Church Government for an Anti-Institutional Age, writes, “Polity is what constitutes the local church as a local church. Put another way, polity provides the nexus between the universal church and the local church.” He also states, “Polity is inevitable. The only question is whether one’s polity is coherent, orderly, and, most of all, biblical.” In an age where institutionalism is often viewed as outdated, restrictive, or merely tradit
May 22 min read


관포지교(管鮑之交)를 그리며
목사 / 수필가 김덕원 사기(史記) 열자(列子) 편에 관포지교(管鮑之交)라는 말이 있다. 춘추시대 초엽 제(齊)나라의 두 관리였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 같은 친구라는 뜻으로 남다른 교제를 일컬어 사용하는 말이다. 한평생 둘도 없는 정치 동료로 제나라를 섬기던 관중은 훗날 포숙아에 대해서 감사한 마음을 이렇게 술회하였다고 한다. “나를 낳아 준 분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사람은 포숙아였다(生我者父母 知我者鮑叔也)." 나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다. 그 친구를 처음 만났을 때는 내가 고등학교에 막 입학한 초봄으로 기억된다.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 며칠이 지나야 가까워지는 게 일반적이지만, 가끔은 하루 만에 친구가 되기도 한다. 나에게도 십여 명의 친구가 생겼다. 개학한 지 한 달쯤 지났을까, 오늘도 여전히 장난질에 한창인 친구들 사이로 처음 보는 듯한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키는 훤칠하고 몸도 균형이 있어 보였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그 친
Apr 181 min read


인생 제 2막
로사 황(본보 주필. 수필가) 세상은 봄을 맞을 준비가 한창인 삼월인데, 로키 산에는 고요하게 포슬 눈이 내리고 있다. 활기찬 표정의 개들이 온 표면에 그려져 있는 미니 밴은 로키 산맥 정상을 향하여 가파른 눈길을 의연하게 올라가고 있다. 차가 목적지에 다다르자 수 십 마리의 울부짖음이 정적을 깨부순다. 그것은 거의 포효에 가깝다. 내가 탄 썰매를 조정해 줄 안내인 프란시스는 눈 위를 달리기 시작하면 조용해 질 것이라며 다소 당황하고 있는 우리들을 안심시킨다. 다섯 마리의 개가 일렬로 줄에 묶인 채 내가 타고 있는 썰매 앞에 정렬하고 서 있다. 몸을 눕히고 담요를 목까지 잡아당기니, 긴장감이 다소 녹는 것 같다. 개들은 뛰기 시작하자 프란시스의 말처럼 신기하게도 짖는 것을 멈춘다. 어느덧 눈발이 강하게 변해있다. 몇 천 미터 고지에서 내려다보는 로키의 설경은 가슴이 벅차 오르는 낭만이다. 다섯 마리의 개는 종류가 다를 뿐만 아니라 맡은 역할이 모두
Apr 181 min read


건물을 넘어, 세대를 세우는 ‘믿음의 집’으로
김치남 목사 ( 예수촌교회 ) 교회가 새 공간에 들어선다는 소식은 반갑다. 그러나 입당은 단지 건물을 옮기는 일이 아니다. 그 안에 어떤 믿음이 흐를 것인가, 어떤 예배가 드려질 것인가, 어떤 세대가 자라날 것인가를 다시 묻는 시간이다. 예수촌교회는 바로 그 질문 앞에서 걸어왔다. 어떤 건물을 가졌는가보다, 어떤 공동체로 서야 하는가를 더 중요하게 여겨왔다. 흩어지는 교회 , 일상으로 흐르는 믿음 예수촌교회의 핵심 철학은 분명하다. 교회는 주일 한 번 모이는 곳에 머물지 않고, 가정과 일상으로 흘러가야 한다는 것이다. 예배당 안에서만 머무는 신앙이 아니라, 식탁에서 이어지고 길 위에서 이어지고 잠들기 전 기도 속에서도 이어지는 신앙이어야 한다는 믿음이다. 그래서 예수촌은 ‘모이는 교회’이면서 동시에 ‘흩어지는 교회’를 지향한다. 모일 때 은혜를 받고, 흩어질 때 말씀을 살아내는 공동체. 그것이 예수촌 교회가 꿈꾸는 교회의 모습이다.
Apr 181 min read


테테레스타이
고영민 목사 ( 본 한인교회 ) 요한복음에 따르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은 이 짧은 한 문장이었습니다. 헬라어로는 ‘테테레스타이(tetelestai)’. 이 말은 당시 상인들이 빚이 모두 갚아졌을 때, 청구서 위에 적던 말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다 지불되었다.”, 더 이상 남은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갚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같습니다. 실수에 대한 책임, 관계 속에서의 미안함, 스스로에게 느끼는 부족함까지. 마음 한편에는 “아직 덜 했다”는 느낌이 항상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더 노력하고, 더 잘하려 애쓰며, 때로는 스스로를 몰아붙입니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 예수님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마치 오래된 장부를 덮으며 더 이상 계산할 것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그렇게 담담하게 그리고 단호하게 선포하십니다. 가끔 식당에서 계산을 하려는데 이미 누군가 밥
Apr 181 min read


아킬레스건
김용식 목사 ( 온누리연합교회 ) 아킬레스건(Achilles tendon)은 발뒤꿈치에 있는 힘줄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힘줄은 허벅지와 종아리의 근육을 발뒤꿈치뼈와 연결하여 우리가 걷고 뛰고 서는 모든 활동을 가능하게 한다. 특히 발뒤꿈치를 들어 올리는 동작, 즉 까치발을 드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체중이 많이 나가는 사람도 까치발을 들 수 있는 것은 아킬레스건이 강하게 몸을 지탱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한 만큼 한번 끊어지면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온다. 회복과 재활이 쉽지 않아서 운동 선수들은 이 부상으로 인해 선수 생명이 끝나기도 한다. 그래서 아킬레스건이라는 말이 발뒤꿈치 힘줄이라는 본래의 뜻보다 치명적인 약점을 가리키는 말로 쓰일 때가 더 많다. 사람마다 각자의 약점인 아킬레스건이 있다. 탁월한 사람일수록 그 약점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은 다른 부분이 뛰어나기 때문에 그 한 가지 부족함이 더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Apr 181 min read


자비량으로 하는 목양은 주님의 눈치를 본다
김초희 목사 ( 노스욕 한인열린교회 ) 중학교 시절 일본의 기독교 여류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에세이 ‘길은 여기에’를 읽었다. 질병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고 병문안 오던 미우라 씨와 사랑의 편지도 주고 받았던 그녀의 삶, 그와 결혼하고 작은 구멍가게를 하다가 앞집 가게를 위해 물건을 줄이고 손님을 보냈던 그 여인이 남는 시간에 소설을 써서 동아일보에 당선된다. ‘빙점’이었다. 나는 질병이 오면 더 강해질 것으로 그녀의 책들을 보며 은연중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병을 앓으면서 마음은 약해지고 몸은 연약해졌다. 참 아이러니하게 그래도 나는 버텼다. 내가 그나마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것은 강단을 지켰기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는 에스토니안 정교회 예배와 건축이 남아 있는 루터리안 교회에서 렌트하여 한국인 예배를 드리는 교회이다. 참으로 이상한 것은, 교회 건물이 은혜를 준다는 것이다. 교회밖에는 그들의 납골당 세미터리가 700여 개 있어 삶과 죽
Apr 181 min read


“다시 돌아가, 그 이름을 부르는 시간”
정해균 목사 ( 몽턴소망교회 ) 어느 가을날이었다.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었다. 약속 시간에 늦을 것 같아 마음이 조급해졌고, 발걸음도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그때, 남의 집 담장 너머로 코스모스가 피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무심히 지나쳤다. 그저 바쁜 하루 속에서 스쳐 지나가는 풍경일 뿐이었다. 그런데 몇 걸음을 옮기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추었다. 다시 돌아갔다. 그리고 담장 너머로 손을 뻗어 코스모스 두 송이를 조심스럽게 손에 들었다. 조용히,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불러 보았다. “코스모스다.” 그 순간, 그 꽃은 더 이상 풍경 속 일 부분이 아니었다. 가을의 빛과 바람을 머금은 채 내 마음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비로소 그 가을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사순절은 바로 이런 시간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바쁘게 살아간다. 그 과정 속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쉽게
Apr 181 min read


부활의 일상
김치길 목사 ( 빌라델비아교회 )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절망이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붙들면 되지만, 희망의 불이 완전히 꺼져버릴 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지난 3년간 가졌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슬픔과 절망 가운데 무덤을 가장 먼저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했음에도 여자들은 믿지 못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 역시 믿지 못했습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의 모습은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절망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8)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예수께서 너희
Apr 181 min read


하나님을 AI 대하듯 하는가?
신현철 목사 ( 빅토리아 한인교회 . BC 주 ) 최근 ‘다보스(Davos, Switzerland) 포럼’(WEF)에서 유발 하라리는 현대 철학의 기초인 데카르트의 명제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가 위기에 처했다고 진단했는데, 왜냐하면 “만약, ‘생각’이 단어들을 논리적으로 배열하는 것이라면, AI는 이미 인간을 넘어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특히 언어를 기반으로 하는 ‘법, 종교, 문화적 영역이 가장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 했는데, 왜냐하면 ‘성경조차 AI의 눈에는 그저 정교하게 조합된 단어들의 집합’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는 능력이 더 이상 인간의 전유물이 아니라면,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일까요?’ 인류의 역사는 창세기 12장을 기점으로 거대한 역사의 흐름이 바뀌는데, 창세기 1장부터 11장까지는 ‘인간 실패의 역사’, 아담과 하와의 타락, 가인의 살인, 노아 시대의 폭력,...
Apr 181 min read


죽음 너머에서 피어나는 생명, 부활의 열매
신동희 목사 ( 키치너 워털루 드림교회 )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매년 만물이 생동하는 봄과 함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큰 희망의 계절인 부활절이 찾아옵니다.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심장입니다. 만약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믿음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자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부활을 화려한 승리의 왕관으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이 말하는 부활의 신비는 반드시 '죽음'이라는 좁은 통로를 전제합니다. 땅에 심긴 씨앗이 자기 껍질을 깨고 죽어야만 비로소 뿌리가 내리고 줄기가 자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습니다. 저에게 '대속의 신비'와 '부활의 열매'는 관념적인 신학 용어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남편 고(故)
Apr 181 min read


The Marks of the True Church
What are the marks of the true church according to the Protestant tradition? Protestantism is a broad term that is often used rather loosely today. Some may define Protestantism as a movement that “protests” for the truth of the gospel, and while that contains an element of truth, it does not fully explain what makes a Protestant church truly Protestant. Historically, Protestant identity is rooted in the confessional tradition of the sixteenth-century Reformation. The major
Apr 182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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