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바쁜 설교자들에게 공부하자고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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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천회 목사 (토론토 말씀의 교회)
목사로서 나는 설교자들을 존경한다. 소위 큰 교회 목사님들을 존경하지만, 특히 개척교회 혹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더욱 존경한다. 왜냐하면 성장하지 않는 교회에서 설교하면서 그 많은 고뇌와 무기력을 견뎌가며 사명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거룩을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설교자들을 존경하고 격려하면서 동시에 끊임없이 "공부하자"라고 말한다. 마치 사정도 모르면서 자기만 잘났다고 말하는 사람처럼…. 내가 매일 3시간 이상 책을 보며 공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첫째, 너무 모르는 게 많아서 조금이라도 알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교회와 기독교에 대해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은혜받고 신학교에 가보니 목사님 자녀, 장로님 자녀 등 어찌 그리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이 많은지 나는 너무도 작고 무식하게 느껴졌다. 목사가 된 이후 나름 노력했지만 여전히 성경도 모르고 세상 상식에 턱 없이 부족하니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둘째로, 목사로서, 설교자로서 교인들을 대신해서 내가 알아서 처리해 줄 것이 많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교인들은 일터에서 현장에서 쉴 시간이 없이 일하고, 또 일해야 살아갈 수 있다. 나는 다행히 목사로서 자기만 열심히 하면 책을 읽을 시간이 있다. 때로는 나를 위해서, 때로는 내 설교를 듣고 있는 청중들을 위해서, 때로는 교인이 부탁한 것을 처리해 주기 위해 책을 읽는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
셋째, 책을 읽는 목사로서 현장 목회를 하다보니, 신학과 목회의 거리가 상당히 멀다는 사실을 수시로 느끼면서 마음에 두려움이 가득하다. 신학자와 설교자는 각자 딴소리를 한다. 마치 서로에게 "너희는 모르느니라"라고 말하면서 자기만의 동굴 속에서 갇혀 살기로 작정이라도 한 듯이….
목회 현장에서 나타나는 문제에 대한 신학적인 답을 주어야 하는 신학자가 목회 현장으로부터 멀리 있고, 신학적인 답을 나의 목회 현장에 적용하며 생명을 살려야 할 설교자가 신학과 거리가 먼 내용을 설교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하다 보면 기독교는 자부심에 가득찬 신학자와 설교자만 남고 청중은 사라진 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두렵다. 부끄럽다. 혹자는 또 비판할 것이다. “목사가 기도하자!” 혹은 “성경을 읽자!” 라고 해야지 “왜 공부하자고 하느냐!”고. 사실 내 마음속에는 기도하고, 성경 읽는 것은 기본이고, 그 외에 공부도 열심히 하자는 뜻인데 왜 그렇게 비판에 부지런하고 자기의 부족을 채우는데는 게으른지 모르겠다. 사실 기도와 성경 읽기와 공부는 크게 다르지 않은 영적인 일이다. 분명한 것은 오늘날과 같은 시대에 설교자로 살아가는 분들을 존경하고 사랑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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