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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에서 회복으로: 스스로를 돌아보라 부르시는 주님의 음성
크리스토퍼 랜드(Christopher D. Land), 맥마스터 신학교, 신약 교수) 크리스토퍼 랜드 교수는 2013년에 맥마스터 신학교의 신약신학 교수로 부임하였으며, 현재는 “성서 언어학, 번역, 주해 센터” 소장과 “OpenText.org 프로젝트” 개발도 함께 담당하고 있다. 크리스토퍼 랜드 교수의 연구 관심 분야는 현대 언어학적 방법론을 신약성경 연구에 적용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그는 그리스어 일반 문법과 구조, 본문 중심의 주해적 논의, 사도 바울의 생애와 신학 연구를 수년간 수행해 왔다. 또한 교회의 성경 읽기 운동과 리더십 훈련과 관련된 실천 신학 분야에도 기여하고 있다. 현재 크리스토퍼 랜드 교수는 해밀턴 동부 지역 교회에서 정기적으로 설교하고 찬양을 인도하며, 그 외에도 성경 공부, 소그룹 사역, 예배 모임 등 다양한 활동을 지도하고 있다. 번역: 박성민 교수(맥마스터 신학교, 목회신학교수) 모든 기고문의 한글판 번역으로 섬기
May 85 min read


경외와 경배의 자리: 교부들의 초대장
제임스 페이튼 (James R. Payton Jr. 맥마스터 신학교, 교회사 교수) 제임스 페이튼 교수는 2021년부터 맥마스터 신학교의 역사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그는 Redeemer University에서 30년간 교수직을 수행한 뒤 역사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또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필라델피아), St. Stephen’s College(알버타 대학교),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크로아티아 오시예크), Matthias Flacius Illyricus Faculty of Theology(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도 강사 및 겸임교수로 가르쳤다. 제임스 페이튼 교수는 CAREE(Christians Associated for Relationships with Eastern Europe, 동유럽 관계를 위한 기독교인 협회)에서 사무총장(1998~2006)과 회장(2006~2
May 24 min read


교회를 향하신 성령의 음성: 탈기독교 속에서의 현대교회
리 비치 (Lee Beach) / 맥마스터 신학교, 목회신학 교수 - 번역: 박성민 교수 리 비치 교수는2010년 맥마스터 신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마친 후 목회신학 교수로 임용되었다. 그의 전문 분야는 교회의 선교, 문화 속 교회, 실천 신학, 목회학, 기독교 영성이다. 또한 기독교 선교연맹에서 22년간 담임목사, 청소년목사, 부목사, 교육목사 등으로 사역했으며, 온타리오주 앤캐스터에 설립된 앤캐스터 빌리지 교회 창립 멤버 중 한 명으로서 지금도 이 교회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 그의 연구 관심 분야는 포스트 모더니즘과 탈기독교 사회속의 교회, 선교적 교회, 21세기 사회적 맥락에서의 목회 및 실천 신학, 그리고 신앙 상담과 영적돌봄 관한 주제이다. 리 비치는 한국어로 번역된 “유배된 교회”의 저자이다. 번역: 박성민 교수 브라이언 클라크와 스튜어트 맥도날드는 그의 저서 『기독교를 떠나며(Leaving Christianity)』에서 지난 한 세기 동
Apr 181 min read


절망의 땅 레바논, 고통 너머 희망의 씨앗을 품다
임미라 선교사 레바논은 오늘날 깊은 혼란과 고통 가운데 있지만, 이 상황은 단순히 최근의 사건이 아니라 오랜 역사 속에서 이어져 온 갈등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특히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은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고, 그 과정 속에서 시아파의 종주국인 이란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사건 이후 레바논은 외부 세력과 내부 종파 갈등이 더욱 복잡하게 얽히게 되었고, 2006년 전쟁을 거쳐 오늘날의 충돌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전쟁 역시 이러한 역사적 흐름 속에서 이해할 수 있으며, 단절된 사건이 아니라 반복되는 상처의 연속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오랜 시간 지속된 전쟁과 갈등은 레바논 사회 전반에 깊은 상처를 남겼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쟁을 경험하며 두려움과 불안, 상실을 반복적으로 겪어왔고, 이러한 현실은 사람들의 마음을 점점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현재의 충돌은 이란과 이스라
Apr 181 min read


Experiencing God’s Grace at Youth Kosta
Juha Ahn (YK26 Small Group Leader) This year, I was given the opportunity to take on the role of being a small group leader at Youth Kosta 2026, and if I were to change one thing about my experience, it is that I would have started last year in Grade 11 instead! Being in a leadership role within a Christian environment was not entirely new to me, as I had previously served as both a praise team leader and small group leader at my home church. However, knowing that Youth Kosta
Apr 22 min read


죽도록 사랑해
홍이숙희 작가 어제 우리 며느리는 일터에서 슬픔과 아픔을 가지고 집에 돌아왔다. 뇌진탕을 겪은 머리의 같은 자리를 또 부딪쳤다는 것이다. 일터에서 사람들로부터 불친절한 말을 듣고 자기를 싫어한다는 느낌이 들고 마음이 슬프다고 했다. 무슨 이유인지 내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아마 병가를 3주 내서 그럴 수도 있고 스태프가 보기에 뭔지 못마땅한 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긴장이 심해서 그랬을 수도 있다. 그런데 신통한 일을 보게 되었다. 신통은 신과 통한다는 뜻인가? 지난달 2월에 겨우 만 세 살이 된 아이가 엄마가 말하는 소리를 듣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They don’t like you? “I like you, Mommy.” “엄마 그 사람들이 엄마 싫어해요? 나는 엄마 좋아해요!” 그러자 엄마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살아났다. 엄마와 세 살 아들은 허그를 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 엄마는 슬픔을 잊고 행복했으리라 생각한다....
Mar 231 min read


가족회의
홍경숙 사모(‘사랑의 고삐로’저자) 우리는 애들을 기르면서 종종 “가족회의”를 열었다. 무슨 특별한 안건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대략 한달에 한 번 꼴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배가 부르고,기분이 좋고, 편안할 때 모였다. 애들에게 숙제가 많거나 시험을 앞둔 때는 피했다. “얘들아, 가족회의 하자!”라고 부르면 얼마나들 기분좋아 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저 위에 있는 커다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저 밑에 있는 쬐그만 우리들”이 아닌,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것이 그렇게도 뿌듯했었나 보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아빠가 그저께 기분이 언짢던 터라 공연히 목소리가 올라갔었는데 용서해라. 미안!” “얘들아, 우리 가정 경제는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단다. 우리집 모기지가 $___ 남아 있고, 매달 은행에다 $___씩 갚아 나가거든. 그리고 한달에 식비는 $__쯤 들어.” “엄마, 지난주 제가 방문을
Mar 231 min read


그냥 갈 수는 없을까?
김신기 목사 내가 토론토에 온 햇수가 아주 오래되신 분들 보다는 비교하기도 쑥스럽지만 30여 년이 지났나 보다. 아니 벌써…. 처음 도착한 지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세월이…. 살다 보니 아는 사람이 제법 많아지고 교민들 경조사에 다니다 보니 언제부터인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하고 아주 가까운 사람, 약간 가까운 사람, 조금 아는 사람, 잘 모르는 사람…. 그런 분 중에 신문에 어떤 일로 인하여 때론 노쇠로, 지병으로, 사고로 이런저런 사연으로 세상을 떠나는 소식을 듣게 된다. 아주 가까운 분들이야 당연히 찾아 유족을 위로하고 같이 슬픔을 나누는 것이 도의상으로나 인간적으로나 당연하지만, 아쉬운 것은 그렇게 가깝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 가는 인생의 길을 동참하여 조문하고 싶은 마음이 많이 들 때가 있다. 체면문화인지 성격인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왠지 손부끄럽기도 하고…. 오래전에 장로님 한 분이 돌아가시면서 부조금을
Mar 121 min read


‘스무 살,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를 만나다 (2)’
김수남 권사(빌라델비아교회) (지난호에 이어) 눈물과 콧물이 멈추지 않았다. 내 안에 이렇게 많은 눈물이 있었는지 그날 처음 알았다. 그리고 마침내 가슴 깊은 곳이 쾅 하고 열리듯 뜨거워졌다. 설명할 수 없는 평안이 밀려왔다. 그 순간, 예수님이 나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는 사실이 머리가 아니라 영혼으로 믿어졌다. 부활도 재림도 더 이상 교리가 아니었다. 살아 계신 주님의 약속이었다. ”하나님 아버지…” ”주님…”입술이 먼저 고백했고,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 퍼지는 외침이 터져 나왔다. “할렐루야!” 그리고 그날 분명히 깨달았다. 믿음도 없이 중학교 시절 성적을 위해 공부했던 성경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시험을 위해 외웠다고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때 내 안에 믿음의 좋은 씨앗을 심어 두고 계셨던 것이다.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순간, 이미 알고 있던 말씀이 전혀 다른 빛으로 다가왔다.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Mar 121 min read


입술의 열매
홍경숙 사모 ( ‘ 사랑의 고삐로 ’ 저자 ) 우리 교회에 셜리 (가명)라는 백인 자매가 있었다. 어릴 때에 엄마의 학대가 얼마나 심했는지 영문도 모른 채 날이면 날마다 몇시간씩 벌을 서곤 했다고 한다. 셜리의 말로는 아빠가 자기를 끔찍하게 사랑했었는데 아마도 엄마는 자기를 경쟁자로 보고 그런 짓을 한것 같다고 말했다. 말할 수 없는 고민 끝에 학대받는 것을 보다 못한 아빠가 정부에 고발을 했고, 엄마의 반대로 재판을 받게 되었다. 법정에 선 다섯살된 어린 셜리를 보고 재판장이 말했다. “이 법정은 파란 눈에 블론드 머리를 가진 어린 네가 설 곳이 아니다.”라고 말하면서 “너는 사랑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라고 물었다 한다. 셜리는 “이유 없이 매일 벌받지 않는 그것이 사랑이에요.”라고 답했다. 아버지는 이 어린 딸을 더 이상 학대받지 않도록 떠나보내야 하는 아버지의 찢어지는 가슴을 이해하시냐 면서 재판장 앞에서 대성통곡을 했다. 아동
Mar 121 min read


암 환자는 처음이라 - 다섯 번째 이야기
김초희 목사 ( 노스욕 한인열린교회 )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예전에는 오래 살 것을 대비해 치매 걸리지 않는 지식 습관들을 지키려고 노력했는데 환경에 따라 마음이 변하나 보다. 이제 치매는 안 올 것 같아 마음이 놓인다고 가끔 농담처럼 넘기며 웃는다. 완치가 없는 유방암, 그러나 생존율이 90%나 된다. 방사선이 끝난 1월 증순, 나는 중단했던 목사님들과의 줌 미팅 스터디를 시작했다. 늘 기도해 준 팀이고 내가 한국에 가고 싶은 마음을 잊어 버리게 한 분들이라 멤버 권유를 거절하지 못했다. 2주 정도는 등과 눈이 좋지 않았지만, 그 후부터는 페이스를 지키게 되었다. 어려움 속에서 버틴 우정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최근에 수술한 부위가 한쪽으로 몰려 딱딱해졌다. 나는 집에 온 작은 아이에게 부위를 보여주며 어떡해, 라며 울먹였다. 몸의 불균형이 갑작스러웠던 것이다. 아이는 침착하게 의사와 간호사의 말을 기억하곤 살짝 웃었다. 마사지를 해
Mar 121 min read


암 환자는 처음이라 - 네 번째 이야기
김초희 목사 ( 노스욕 한인열린교회 )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보호색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병을 앓고 난 지금도 운동은 걷기와 일하기이다. 참 재미없지만 책이 있어서 그 속에 정보들을 기억하고 활용한다. 항암과 수술, 방사선을 한 내 몸에 반신욕과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하는 음식과 소금물을 공급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어느 날 주부습진이 올라와 살을 찢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친구가 사다 준 죽염을 따뜻한 물에 조금 타서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마셨다. 효능은 놀라웠다, 3일이 지나자 말끔해졌다. 그날 이후, 소금물은 나에게 약이 되었다. 체중이 줄었을 때도 내게 어지럼증을 줄여 주었다. 고통이 익숙해질 때, 우리는 평온했던 날들을 잊어 버린다. 방사선을 끝내고 나는 여전히 손이 굳는 통증과 수술 부위 통증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 갑상선을 조절하는 알약과 에너지
Mar 61 min read


’스무 살,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를 만나다 (1)’
김수남 권사 ( 빌라델비아교회 ) 중학교 3년 동안 성경을 배웠다. 시험을 보면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이론적으로는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지식은 머리에 머물러 있었을 뿐, 가슴까지 내려오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교사로 섬기게 되었다. 엄마처럼 사랑으로 돌봐 주던 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순종했다.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가르치는 일도 즐거웠다. 학생들도 나를 잘 따랐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확신도 없는 하나님을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자신 있게 잘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이번 금요 철야 예배에 나도 갈게.” 언니는 정말 기뻐했다. 그날 나의 기도 제목은 단 하나였다. “언니를 만나 주신 하나님, 저도 만나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주일에 아이들 앞에 설
Mar 61 min read


암 환자는 처음이라 - 세 번째 이야기
김초희 목사 ( 노스욕 한인열린교회 ) 소리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 나는 그냥 울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지나는 것들이 아름답고 찬란하다. 차를 타고 풍경들을 스치면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온통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이어서 좋다. 수술을 앞둔 날, 큰딸 아이의 첫 백일이었다. 두 딸아이가 도란도란 식탁에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힘들어 작은 방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슬픔이 몰려왔다. 내가 떠나면 이렇게 살겠구나, 다행이다. 둘이니…. 그럼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생각들이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아이들을 못 볼까 봐 겁이 났다. 사랑은 자주 연약해진다. 나는 둘째 아이가 엄마 잘못될지 겁을 냈다는 사실을 수술 후에야 알았다. 아이는 나로 인해 병이 들었다. 마음에 바람이 들어온다. 유방암을 제거하기 위해 유방 수술 당일 의사에
Feb 211 min read


찬양으로 고백하는 믿음과 삶의 감사(1)
김수남 ( 빌라델비아교회 권사 , 작가 , 코치 )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 찬송가 259 장 ) 이 찬양은 내가 처음 부르며 익힌 첫 찬양이다. 내가 다닌 시골 일직중학교 앞에는 맑은 강 미천이 흐르고, 뒤로는 꿈의 동산 같은 하나산이 펼쳐져 있었다. 정다운 풍경 속에 자리한 학교의 교가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나산 기슭의 배움의 전당, 앞에는 미천이 둘렀네~” 나는 그것이 찬양곡인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배우고 즐겨 부르곤 했다. 내가 나고 자란 경북 안동 일직면은 유교 문화가 짙은 지역이었다. 불교 신자가 대부분이었고, 백 호가 넘는 우리 동네에서 예수님을 믿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교회는 삶의 반경 안에 있었지만, 믿음은 내 삶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는 기독교 재단 학교 하나뿐이었기에, 면내 여섯 개 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그 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덕분에 나는 성경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 찬양을
Feb 211 min read


찬양으로 고백하는 믿음과 삶의 감사(2)
김수남 ( 빌라델비아교회 권사 , 작가 , 코치 ) 실로암 - ‘ 광야 같은 삶에서 , 보냄을 받다 ’ 중학 3년 동안 성경을 배우고 예배드렸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모셔 들이진 못했다. 아직 나의 주님이 아니었다. 1920년생 아버지, 1926년생 어머니의 4남 3녀 중 여섯째이자 셋째 딸인 나는 부모님과 언니 오빠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다. 막내 남동생도 마치 오빠처럼 든든했다. 5일마다 서는 운산 장에서 사 오시던 간고등어 두 손은 우리 집 저녁상을 작은 잔치로 만들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굶어 본 적은 없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평범한 밥상이 이미 하나님의 돌보심이었다. 선발제인 안동여고에 합격했지만, 부모님 마음에는 기쁨보다 부담이 더 큰 농촌 형편이었다. 졸업 후 곧바로 대학에 가지 못하고 부모님 농사일을 도왔다. 고추를 따다가 마음속에서 결심이 일어났다. ‘뭔가 길을 찾아봐야겠다!’ 중학교 2학년 때 담임이셨던 송
Feb 211 min read


신성균 장로의 북미대륙 횡단기 마지막 편
국경을 넘어 캐나다에 들어서다 우리에게 캐나다는 37년간을 살아온 또 하나의 조국인 셈이다. 외국 여행을 마치고 마치 집으로 돌아가는 기분이다. 국경을 넘어서자, 우리에게 친숙한 Tim Horton이 멀리 보인다. 살다 보면 사는 곳이 고향이라더니, 이제 이 땅은 나와 내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갈 곳이라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뭉클해진다. 밴쿠버에 도착하여 지난 60여 년간을 한국과 LA에서 살며 가장 가깝고 친하게 지내오고 있는 친구 내외와 그의 자녀들을 오랜만에 만났다. 그들이 이미 준비해 놓은 크고 넓은 Airbnb에서 여장을 풀고 그동안 살아온 세월을 밤늦게 이야기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를 여기까지 그림자처럼 따르며 보호해 준 아들은 며칠 후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잠시 업무차 한국으로 출국하였다. 친구는 몸이 불편한지 자녀들의 부축을 받으며 걷는 것을 보니 세월의 무상함과 우리의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을 다시 한
Feb 211 min read


찬양을 준비하는 시간, 그 수고는 어디에 남는가?(2)
최광은 (Sky Choi) (캐나다 1.5세 이민자로, Gateway Seminary에서 목회학 석사(M.Div)를 공부했다. 어릴 때부터 예배와 함께 자라며,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이민교회의 예배 현장에서 예배를 섬겨왔다. 그는 예배를 주일의 한 시간이나 정해진 순서로만 이해하지 않는다. 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다시 기억하고, 삶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시는 일이라고 믿는다. 그 예배는 한 사람의 삶에서 시작되어 공동체로 이어지고, 결국 세상으로 흘러간다. 그는 예배를 ‘잘하는 법’을 가르치기보다, 예배의 처음과 본질을 다시 묻는 자리로 사람들을 초대하는 예배 인도자다. 현재 The Fellowship of Evangelical Baptist Churches 교단 예배 사역 선교사로 활동하며, 예배자들의 영성 형성과 지속 가능한 예배 사역을 돕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www.kworship.app ) K-Worship은 숙달된 예배 인도
Feb 121 min read


암 환자는 처음이라, 첫 번째 일기
김초희 목사 ( 노스욕 열린교회 ) 몸이 아픈 사람은 마음이 먼저 아프다. 하늘을 보아도 지는 석양이 아름답고 저녁 하늘 이름 없는 별들도 이름을 붙이며 마음을 달랜다. 이름없는 것들의 슬픔을 알기라도 하듯이 꼼꼼히 하나하나 새 이름표를 달아준다. 2025년 1월 8일 교회에 나온 새신자 콘도를 방문했을 때, 미안하게도 전화가 울렸다. 망설이다 받으니 패밀리 닥터였다. 암이 의심되어 병원을 잡았다며 정보를 알려주었다. 나의 긴 암 투병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외롭고 긴 투병이었지만 이상하게도 기도해 주는 사람이 내 주변에 많았다. 때로 하나님의 일은 이해되지 않을 때가 많다. 여성 암이라 알리는 것이 민망했던 처음의 생각은 사라지고 감사한 생각들이 급하게 마음을 오고 갔다. 유방암 3기로 옆구리까지 전이가 되어 나는 초음파검사나 기타 검사에 언제나 의사 후보생들의 모델이 되었다. 나는 병원의 허가 동의서에 언제나 허용했으며 병원에서 요구하는
Feb 121 min read


암환자는 처음이라, 그 두 번째 일기
김초희 목사 ( 노스욕 열린교회 )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큰 문제나 걸림돌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지 못한 낙심의 노출에 그냥 마음을 놓아버린다. 나에게는 낯설었던 병원 로비, 높은 천정 중앙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병원 로비에서 자신의 번호를 호명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에 마주 앉은 사람들처럼 상대를 관찰하다가 자주 눈빛이 마주하면 낙심한 마음이 훤히 보였다. 병원카드로 나의 번호를 입력하고 기다리다가 간호사의 호출에 키와 몸무게를 재고, 대기 순서표를 뽑아 피를 뽑는다. 3개의 플라스틱 병에 나의 이름이 명시되어 의사들이 체크하면 또 다른 파트의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매주 한 번 맞는 키모- 12번, 그러나 2주는 약하게 3주째는 강한 키모여서 처음에는 7시간에 12개의 링거를 맞았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기간이 찾아오고, 2주가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움푹 손에 잡힐 만큼 사라졌다. 나는 머리를 짧게 밀었다....
Feb 121 min r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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