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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이야기

  • 5 days ago
  • 3 min read

황로사 작가(수필가. 본보 주필)


이야기 하나

첫사랑에 실연당하면 이런 기분일까. 눈에 넣어도 안 아프다는 과장된 말도 손주 사랑하는 표현에는 지나치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딸이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누군가 물었다. 손주를 보면 너무 예쁘다던데 정말 그러냐고. 어떻게 표현해야 적당한 걸까,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 "그건 경험해 봐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말로 하기는 힘들다는 나 나름대로의 대답이었다. 그런데 어느덧 초등학생이 된 아이가 외할머니인 내가 싫단다. 이유는 자기만 보면 허그 하자고 달겨 든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얼마 전부터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쓰윽 눈치 보면서 내 앞에서 없어지곤 했었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나는 몸으로 놀아주고 마음껏 표현해야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았고, 그걸 사랑으로 느끼는 줄 알았다.


가끔 딸네 집에 가서 집안 일을 도와주다가 보면, 큰 손자는 소파에 꼼짝하지 않고 앉아 책만 보고 있다. 둘째는 형 따라 책을 잡고 있다가 어느새 던져 버리고 장난감 쪽으로 간다. 다소 과장하는 나의 사랑 표현에 작은 손자는 까르르 웃으며 더 해달라고 했는데, 큰 손자는 그게 속으로 싫었던 거였다. 얼마 전, 딸이 말했다. "엄마, 같은 배에서 나온 두 아이가 어찌 저리 다른지 몰라요. 큰 애는 완전 시댁 쪽을 닮았고, 둘째는 먹는 것도 성격도 아빠랑 똑같아 신기할 정도에요." 외탁을 했다는 말이다.

'그래도 그렇지....' 첫 손자에게 사랑을 쏟았던 육십 넘은 할머니는 상처받고 시들어 있다.


이야기 

토론토의 유월은 이글거리는 태양만큼 술렁이고 뜨겁다. 학교마다 무지개 깃발이 휘날리고, 텔레비전에선 온통 동성애를 부추기는 뉴스 일색이다. 합법으로 통과시키고 나니, 그 세력이 너무 커지고 있다. 인권 존중 차원이라지만, 일반인이 오히려 그들의 기세에 눌려 차별을 받고있는 느낌이다. 지난 금요일 오전, 딸과 통화를 하는데, 학교에 있어야 할 큰 손자가 옆에서 내는 목소리가 전화선을 타고 들렸다. "재준이, 학교 안 갔니?" "일부러 학교에 안 보냈어요." 크리스마스나 할로윈 때처럼 동성애 축제를 기념하는 복장을 하고 등교하라는 알림이 왔다는 거였다. 무지개 색깔 옷을 입든지, 여자가 남장을 하든, 남자가 여장을 하든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단다. 도저히 거기에 순응하고 학교에 보낼 수는 없었다고 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그다지 피부에 와 닿지 않았었다. 30년 정도 차이가 나는 딸과도 세대 차이를 많이 느끼지 않고 살았다. 어릴 때 내가 먹은 음식을 딸도 좋아하고, 학교 교육도 내가 자랄 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새로운 원이 아니라 같은 원을 새롭게 도는 느낌이었다. 당황스러우리만큼 급속도로 변하는 시대를 실감한 건 SNS가 확산되기 시작했을 때였다. 유튜브나 페이스북, 카톡 등이 미치는 긍정적 영향은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러나 통제하지 않는 가짜 뉴스와 음란 사이트로 인해 피해를 보며 목숨까지도 잃게 하는 부정적인 영향이 어디까지 치달을런지. 몇천 년 전부터 있었다는 동성애가 음지에 머물며 가려져 있었는데, 이렇게 세상에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것도 SNS의 확산 때문은 아닐까. 성 소수자는 선택이 아니라 선천적 성향이라고 하더라도, 지지하고 부추길 일은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는 정도를 넘어서고 있다. 온타리오주에서는 시니어에게 일 년에 한 번씩 해 주는 무료 눈 검사를 재정 부족이라는 이유로, 일 년 육 개월로 연장했다. 반면 성전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드는 막대한 수술 비용은 온타리오 의료보험(OHIP)으로 커버되고 있다. 정치인들과 법조인들이 바른 판단을 하고 있는지 의심될 때가 많다. 월말에 다운타운에서 있을 퍼레이드를 향해 분위기가 들썩이는 가운데,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동성애를 인정하는 복장으로 학교에 오라는 건 충격이었다. 이건 아니다 싶었다. 세상이 정말 어떻게 되어가는 건가.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성 정체성마저 혼돈에 빠뜨리는 사회에서 아이들이 바른 생각과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에필로그

나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했던 환경이 현실이 되어 있음을 실감하게 해 준 날, 이런 시대를 살아갈 손자들이, 아니 모든 아이들이 걱정된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과연 있을까.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등을 떠밀어도,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하며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곁에서 마음을 같이 해 주고 싶다. 사랑과 관심으로. 그러나 내 방법이 아니라 아이들의 성향에 맞춰서 해 줄 수 있는 건 다 해 주고 싶다. 미완의 할머니가 큰 손자에게 가졌던 섭섭함이 애틋함이 되어 녹아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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