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는 교회학교가 없었다
- Jun 5
- 2 min read
정요한 목사 (런던 가스펠교회)
이민교회의 가장 아픈 통계 하나가 있다. 사회학자 민병갑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2세 한인 가운데 매주 한인교회에 출석하는 이는 약 30%에 불과하다. 1996년 헬렌 리는 이 현상을 ‘조용한 출애굽(Silent Exodus)’이라 불렀고, 연구마다 차이는 있으나 2세의 55%에서 90%가 부모의 교회를 떠난다고 본다. 부모는 분명 신앙을 물려주었다고 믿는데, 자녀는 조용히 사라진다. 왜 일까?.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교회학교’의 뿌리를 더듬어 보면 단서가 보인다. 교회학교는 250년이 채 되지 않은 제도다. 1780년, 영국 글로스터의 신문 발행인 로버트 레이크스(Robert Raikes)가 주일마다 거리의 가난한 공장 아이들을 모아 글과 성경을 가르친 것이 그 시작이었다. 본래 교회학교는 신앙의 가정을 갖지 못한 아이들, 곧 ‘교회 밖 아이들’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기 위한 거룩한 발명품이었다. 좋은 제도였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묘한 일이 벌어졌다. 본래 ‘가정이 없는 아이’를 위한 도구가, 어느새 ‘가정이 있는 아이’의 부모마저 신앙 교육을 통째로 떠넘기는 창구가 되어 버린 것이다. 주일 한 시간 자녀를 교회학교에 들여보내는 것으로 부모의 책임이 끝난 듯 여겨졌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지난 광야에는 교회학교가 없었다. 그래도 신앙은 한 세대도 끊기지 않았다. 비결은 가정이었다. 모세는 광야의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훗날 자녀가 “이 모든 규례가 무슨 뜻이냐” 묻거든, 우리가 애굽에서 종 되었을 때 여호와께서 인도해 내신 일을 들려주라는 것이다(신 6:20-21). 요단강을 건넌 뒤 쌓은 열두 돌도 같은 목적이었다. 자손이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묻거든(수 4:6) 하나님이 행하신 일을 이야기하라는 것이다. 신앙은 교리의 전달이기 전에, 우리 가정에 친히 행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를 부모의 입으로 자녀에게 들려주는 일이다. 자녀가 물을 때 대답할 이야기를 가진 부모가, 결국 신앙을 물려준다.
교회에는 또 하나의 자리가 있다. 온 세대가 함께 드리는 예배다. 아이들을 늘 따로 떼어 두지 않고 때때로 부모 곁에 앉힐 때, 아이는 두 가지를 배운다. 하나는 말씀을 듣는 법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대목이 있어도, 함께 성경을 펴고 함께 귀 기울이는 그 자리에서 예배의 자세가 몸에 새겨진다. 다른 하나는 부모의 예배 태도다. 아이는 부모가 무엇 앞에서 눈을 감고, 무엇 때문에 눈물 흘리며, 무엇에 “아멘” 하는지를 곁에서 배운다. 어떤 설교보다 강한 설교가 거기에 있다. 조용한 출애굽은 거창한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는다. 비어 가는 것은 늘 식탁과 예배의 자리부터다. 그렇다면 다음세대를 되찾는 길도 그 두 자리에서 시작된다. 가정의 저녁 식탁에서 하나님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교회의 예배 자리에 자녀를 곁에 앉히는 것. 우리의 다음세대가 부모의 신앙을 구경만 하다 떠나지 않고, 그 신앙을 상속하기를 기도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