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슬리의 '완전'은 해방이다
- Jun 5
- 2 min read
김동욱 목사(큰나무교회)
18세기에 요한 웨슬리가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은 안타깝게도 오랜 시간 종교적 완벽주의라는 비판을 받아야 했다. 독자들의 주체성을 억압하는 폭력적인 지침처럼 여겨진 것이다. 인간이 처한 구체적인 시대적, 역사적 배경을 무시한 채 절대적인 기준만 강요하는 텍스트는 필연적으로 자기 착취를 낳고, 나아가 타인을 배제하는 폭력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완전'이라는 개념을 현대 현상학의 '에포케'(Epoche, 판단중지) 라는 렌즈로 바라보는 순간, 웨슬리의 기획은 전혀 다른 생명력을 얻는다. 인간을 억압하던 교리가 아니라, 내면의 폭력성을 잠재우는 가장 역동적인 실천이 되는 것이다. 이때 완전은 '완벽한 존재가 되려는 시도'(명사)를 뜻하지 않고, 오히려 '내 안의 폭력성을 끊임없이 괄호 치는 행위'(동사)로 전환된다. 후설의 현상학에서 에포케가 세상의 선입견을 괄호 안에 집어넣는 작업이듯, 웨슬리의 완전을 에포케로 삼는다는 것은 "내가 옳다"는 자아의 독단과 타인을 재단하려는 편견을 유예하고 멈추는 위대한 윤리적 수행이다.
무언가를 억지로 채워 결점 없는 상태를 만들려는 강박을 내려놓는 것, 오히려 내 안의 권위주의를 부지런히 비워내는 그 과정이 바로 완전의 새로운 정의이다. 이러한 판단중지를 통과할 때, 우리의 의식은 비로소 순수한 '지향성'(Intentionality)을 회복하게 된다. 웨슬리가 말한 완전의 본질, 즉 "마음의 동기가 오직 타인을 향한 사랑으로만 채워진 상태"는 내 마음속 편견이나 이리저리 따지는 계산을 잠시 멈추고 판단을 유예(에포케)했을 때 비로소 도달 가능한 현상학적 사건이다. 나를 지배하던 고정관념을 괄호 칠 때, 내 앞에 선 타인은 더 이상 나의 신학적·사회적 격자무늬 틀(Grid)에 의해 재단되지 않고 그 자체로 빛나게 된다. 그제야 우리는 타인의 고유한 시대성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어떠한 왜곡도 없이 타자를 온전히 환대하는 순수한 이타주의가 시작되는 것이다. 사회적 조건이라는 외벽을 거두어 내고 존재 그 자체의 존엄을 대면하는 것, 그것이 바로 현상학에서 말하는 '본질직관'이자 웨슬리가 꿈꾼 사랑의 실현이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에포케는 우리를 절대적 정답의 폭력으로부터 해방하는 '독자의 탄생'을 보여준다. 이것은 고정된 종착지로서의 이정표가 아니다. 매 순간 흔들리는 삶의 자리, 즉 생활세계 속에서 나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해 내리는 결단이다. 우리는 평생 불완전하고 모순적일 수밖에 없다는 '아포리아'(Aporia)를 겸허히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내 안의 폭력적인 본성을 끊임없이 괄호 치는 에포케의 훈련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역설적인 완전을 살아낼 수 있다. 그래서 웨슬리의 완전은 우리를 가두는 규율의 감옥이 아니라, 스스로 편견을 멈춤으로써 타인에게 무한한 자유를 내어주는 가장 윤리적인 해방의 공간으로 거듭나게 된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