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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잔의 커피곁에서

  • Aug 21
  • 2 min read

백승철 목사 (에드먼턴 파송하는 교회 / 카페 Liberta coffee lab 운영)


카페를 시작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맛있는 커피를 만들고 싶었고, 사람들이 잠시라도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카페를 운영한 지 시간이 흐르면서 이상한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커피를 내리다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어느 순간 그 이야기가 제 마음속에 오래 머무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도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우리 카페에 종종 오시던 한 분이 있었습니다. 조용하고 내성적인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카페에 오시면 제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집 이야기, 아들 이야기, 아내의 고향인 유럽을 여행했던 이야기, 젊은 시절 상업용 냉장고 설치 일을 했던 이야기까지.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그분은 암을 앓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부부가 함께 카페를 다녀간 뒤 저는 종종 그분을 생각했습니다. 문이 열릴 때마다 혹시 다시 오시지는 않을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한동안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내분이 친구와 함께 카페에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며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마음에 남았던 것은 그다음 말이었습니다.


“오늘 남편을 화장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날, 남편과 마지막 작별을 하고 그분이 찾아온 곳 가운데 하나가 우리 카페였습니다. 남편이 이곳을 너무 좋아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남편은 원래 자신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잘하지 않는 사람인데, 카페에서는 이야기했다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데, 한동안 마음이 먹먹했습니다. “나는 그분에게 무엇을 해드렸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대단한 상담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함께 성경을 읽은 것도 아니고, 기도해 드린 기억도 없습니다. 그저 커피를 만들다가 잠시 이야기를 들었고, 질문했고, 웃었고, 때로는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어쩌면 사람에게는 그런 자리가 필요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자신을 설명하거나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무언가를 잘해야 인정받는 자리가 아니라 그냥 앉아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꺼내놓을 수 있는 자리 말입니다. 그리고 누군가 그 이야기를 판단하지 않고 들어주는 자리 말입니다.


요즘 저는 목회가 무엇인지 다시 배우고 있습니다. 목회는 반드시 강단에서만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라는 이름이 붙은 건물 안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닐 것입니다. 한 사람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곳, 지친 사람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곳, 함께 웃고 슬픈 사람 곁에 말없이 머물러 주는 곳이라면 그곳에서도 하나님의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 카페에서 커피를 내리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합니다. 어쩌면 목회란 “사람을 교회 안으로 데려오는 일 이전에, 내가 먼저 그 사람이 살아가는 자리로 들어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고….” 그분이 앉았던 자리는 이제 비어 있습니다. 다시 그분에게 커피를 만들어 드릴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끔 그 자리를 바라보면서 생각합니다. 한 사람이 잠시 머물렀던 자리를 기억하는 것, 그가 들려준 이야기를 잊지 않는 것, 그리고 오늘 또 문을 열고 들어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 어쩌면 그것도 목회의 한 모습일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카페의 문이 열립니다. 누군가 들어와 커피를 주문합니다. 그리고 나는 기대합니다. 그 한 잔의 커피 곁에서 오늘 어떤 이야기가 시작될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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