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의 습격
- Aug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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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보배아이(밴쿠버 소망의 교회)
신임 주필인 김 보배아이(필명) 님은 2022년 (사)한국문협 밴쿠버지부 신춘 문예공모전 수필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2021년-24년 재외동포청 캐나다 해외통신원으로 한인사회를 취재하며 기고 중이며 현재 밴쿠버 소망의 교회(김대영 목사)에 출석하고 있다. 미션 캐나다에서 6개월간 본보 주필로 활동할 예정이다.
크기가 크면 쥐, 작으면 생쥐다. 시골에 살면서 농부의 쌀을 훔쳐 먹으면 시골 쥐, 도시의 뒷골목을 쏘 다니며 쓰레기를 주워 먹으면 서울 쥐라고 한다. 복슬복슬 긴 꼬리를 하늘로 쳐들고 입안 가득히 도토리를 물고 사람들이 있는 곳을 두려움 없이 왔다 가며 사진에 담기면서 사랑받는 다람쥐가 있는가 하면, 단 1초라도 지켜본 자의 온 몸에 소름을 돋게 만드는 극혐의 들쥐도 있다.
낡은 우리 집 주방에 쥐가 출몰했다. 쳐다보기도, 생각하기도, 상상하기도 싫은 바로 그 쥐다. 처음에는 잘못 봤겠지 했다. 뭔가 휙 지나간 것 같은데… 마음은 조금 찜찜했지만 흘려보냈다. 그러다가 셋째가 설거지할 때 앉은뱅이 의자 위에 올라서서 하는 것을 보고 키가 큰 네가 왜 거기 올라가서 하느냐 했더니, 생쥐를 봤다고 했다. 집안에 쥐가 들어왔다!! 더 이상 쥐의 존재는 지나칠 수 없이 확실해졌다. 어떻게 해야 하나. 업체를 불러야 하나. 집주인에게 하소연을 해야 하나.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찾지 못한 채 불안한 잠을 청해야 했다. 다음 날 부침가루를 보관하던 상자 안에 녀석들이 잔치를 벌인 현장을 발견했다. 교회에도 가져가고, 때로 비 오는 날을 위해 아껴둔 부침가루였는데, 다섯 봉지나 그대로 버렸다.
내 너를 반드시 죽이리라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눈앞에 쥐가 보이지 않자, 쥐 잡을 대책을 세우지 않았다. 생쥐들의 잔칫날 다음날, 큰 딸이 참다못해 쥐 잡는 끈끈이를 사 왔다. 우리는 끈끈이의 사용법을 의논하다가 생쥐가 지나가다 발이 붙어 끈끈이에 잡히면 살아서 발버둥 치는 장면이 상상되어 진저리 쳤다. 목숨이 붙은 생명을 쓰레기통에 산 채로 버려야 하는 것 아니냐. 우리는 그 어리석은 연민 때문에 덫 끈끈이 봉지를 뜯지 못했고, 그렇게 차일피일 결단을 연기하였다. 급기야 내가 보유한 최고가 애장 물품 중 하나인 단백질 파우더에 쥐가 뚫어 놓은 구멍을 발견 하기에 이르렀다.
몇 번이나 회개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왜 나는 즉시 옷을 찢고, 온 집안을 쥐잡듯이 털어서 회개하지 않았는가. 나를 원망했다. 회개하지 않은 자가 눈물을 삼키면서 최애 단백질파우더를 쓰레기통으로 가져갔다. 그러나 어리석은 인간은 또 한 번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한다. ‘버리지 말까? 구멍 난 데만 걷어내면? 아무도 모르잖아. 누가 본 사람도 없고 말이야.’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단 말인가. 쥐가 건드린 식품 안에 병균이나 바이러스가 있을까 봐 버려야 하는 것인데 누가 보고 있지 않으니 괜찮지 않을까라니! 내 불감증은 증세가 지독히 심각했다.
쥐 문제는 “쥐” 문제가 아니었다. “죄” 문제였다. 쥐를 처음 보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쉽게 무시해 버렸다. 처리하지 않은 채로 시간을 흘려보냈다. 묵과해 버렸다. 죄를 뭉개고 있으면서도 괜찮을 거야. 안일했다. 어떻게 되겠지…. 그런 무뎌진 사고 안에서 과연 회개는 존재하지 않았다. 결단도 없었고, 상한 심령도 없었다.
망설임은 괜찮지 않다. 변화를 주저하다가 결국 죽음이라는 대가를 치른 후에야 깨달을 것인가. 쥐 문제는 나를 괴롭혔다. 이 상태로 계속 살 수는 없다. 쥐 잡을 덫을 사방으로 팔방으로 길목마다 두었다. 음침한 곳에 등불을 밝혔다. 이윽고 나는 쥐를 잡았다. 한 마리는 끈끈이 위에 이미 죽어 있었다. 새끼손가락만큼 작은 새끼 쥐였다. 미안한 마음으로 묵념하고 처리했다. 다음날 다시 한 마리가 붙잡혔다. 녀석은 숨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쓰레기통에 던져넣었다. 미안하지만 그럴 수밖에.
쥐를 보면서 나는 죄를 보았다. 죄를 처리하지 못하는 내 깊은 죄성을. 쥐를 처리하면서 나는 죄를 대면하였다. 망설이지 마라. 단호하게, 지금, 당장 쥐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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