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꼭 필요한 Go-to Guy
- Jul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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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종술 목사(리자이나 아름다운교회)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걸어 들어가고 싶지 않은 성읍이 하나쯤 있다. 생각만 해도 다리가 후들거리고, 차라리 등을 돌리고 싶은 자리 말이다. 구약의 선지자 요나에게 그 이름은 ‘니느웨’였다. 요나는 한 번 그 자리를 피해 도망쳤다가, 폭풍과 물고기 배 속이라는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진 인물이다. 그런데 물고기가 그를 육지에 토해 낸 뒤, 하나님은 놀랍게도 같은 명령을 다시 내리신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라”(요나 3:2). 실패한 사람을 폐기하지 않고 두 번째 기회를 주시는 장면이다. 다만 눈여겨볼 점이 있다. 기회가 다시 주어졌다고 해서, 니느웨를 향한 요나의 두려움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당시 니느웨는 포로의 가죽을 벗겨 성벽에 걸어 둘 만큼 잔혹했던 앗수르 제국의 심장부였다. 그 한복판으로 혼자 걸어 들어가는 일은 인간적으로는 자살 행위에 가까웠다. 요나에게 니느웨는 거대한 골리앗이었던 셈이다.
이민의 땅에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이들 앞에도 저마다의 골리앗이 서 있지 않을까. 언어의 장벽, 좁아지는 취업과 사업의 문, 자녀들의 신앙적 방황,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살림살이 앞에서 우리는 흔히 “형편이 좀 나아지면”이라는 조건을 걸고 한 걸음 물러선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용기는 두려움이 사라진 상태를 뜻하지 않는다. 두려움을 안은 채로,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택해 걸어가는 것이 용기다. 다윗과 이스라엘 병사들이 마주한 골리앗은 똑같았다. 달랐던 것은 시선이었다. 병사들은 골리앗이라는 ‘문제’에 붙들려 있었고, 다윗은 고개를 들어 ‘하나님’을 보았다(사무엘상 17장). 순종은 형편이 갖춰진 뒤에 따라오는 결과가 아니라, 지금 내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의 문제다. 니느웨에 들어선 요나가 손에 쥔 것도 대단한 무기가 아니었다. 히브리어로 단 다섯 단어, “40일 후에 니느웨는 무너진다”는 투박한 한마디뿐이었다. 다윗이 물매를 단번에 명중시킬 수 있었던 것도 어느 날 갑자기 생긴 재주가 아니라, 들에서 양을 치며 매일 반복한 훈련의 결과였다. 결국 위기의 순간을 버티게 하는 것은 화려한 무기가 아니라, 매일 아침 말씀 앞에 앉는 습관, 조용히 무릎 꿇는 기도, 형편과 상관없이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 반복된 순종이다. 흥미로운 것은, 요나가 던진 다섯 단어가 사실 마지못해, 성의 없이 내뱉은 선포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그 초라한 순종 위에 역사하셨고, 왕에서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온 성읍이 금식하며 돌이키는 놀라운 부흥이 일어났다(요나서 3:5-6). 완벽하지 않은 순종의 조각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면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 훨씬 크게 쓰인다. 부족한 언어, 빈약한 배경, 넉넉지 못한 형편은 결격사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분의 일하심이 또렷이 드러나는 자리가 될 수 있다. 위기의 순간, 스포츠에서는 감독이 믿고 공을 맡기는 선수를 ‘고투 가이(Go-To Guy)’라 부른다. 낯선 땅에서 하루하루를 버텨내는 이민 사회에도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예배당 안에서만 예배자로 머무는 이가 아니라, 두려운 현실 앞에서도 “구원은 오직 여호와께 있다”고 말하며 한 걸음 내딛는 사람 말이다. 도망자의 옷을 벗어 던지고 니느웨를 향해 걸었던 요나처럼, 우리 각자의 니느웨 앞에서 그 한 걸음을 떼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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