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으로 고백하는 믿음과 삶의 감사(1)
- Feb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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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남(빌라델비아교회 권사, 작가, 코치)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찬송가 259장)
이 찬양은 내가 처음 부르며 익힌 첫 찬양이다. 내가 다닌 시골 일직중학교 앞에는 맑은 강 미천이 흐르고, 뒤로는 꿈의 동산 같은 하나산이 펼쳐져 있었다. 정다운 풍경 속에 자리한 학교의 교가는 이렇게 시작했다. “하나산 기슭의 배움의 전당, 앞에는 미천이 둘렀네~” 나는 그것이 찬양곡인지도 모른 채, 자연스럽게 배우고 즐겨 부르곤 했다. 내가 나고 자란 경북 안동 일직면은 유교 문화가 짙은 지역이었다. 불교 신자가 대부분이었고, 백 호가 넘는 우리 동네에서 예수님을 믿는 집은 한 곳도 없었다. 교회는 삶의 반경 안에 있었지만, 믿음은 내 삶의 세계에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중학교는 기독교 재단 학교 하나뿐이었기에, 면내 여섯 개 초등학교 학생들은 모두 그 학교로 진학해야 했다. 덕분에 나는 성경 말씀을 배우게 되었고, 찬양을 알게 되었다. 월요일 첫 시간은 전교생이 의자를 들고 운동장에 모여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었다. 시간표에는 ‘경건회’라고 적혀 있었다. 당시 전교생이 천 명이 넘었기에 운동장은 늘 학생들로 가득 찼다.(지금은 내 모교 전교생이 54명이라 들었다. 세월의 흐름이 마음을 참으로 안타깝게 한다.)
성경 과목도 정식 교과로 있었고, 지금도 기억나는 인자하신 오상영 선생님의 재미있고 생동감 있는 성경 이야기는 특별했다. 포항에서 목회하신 서임중 목사님께서 내가 중학교에 다니던 1976~78년에 우리 학교 서무과에서 근무하셨고, 졸업생 중에서도 여러 목사님들이 배출되었다. 나는 역사 공부하듯 성경을 배웠고, 친구들이 반장으로 늘 뽑아 주어 중학교 생활도 즐거웠다. 성경 시험 점수도 잘 받았지만, 그때 내 안에는 아직 주님이 계시지 않았다. 예수님은 아직 나의 주님이 아니라, 남의 주님일 뿐이었다.
중학생이 될 때까지 교회를 한 번도 가 본 적이 없었다. 집에서 걸어서 25분 거리에 ‘소호리 교회’가 있었지만, 부모님은 불교 신자셨고, 주변에 교회 다니는 친구도 없었기에 교회는 늘 가까이 있었으나 내 삶과는 전혀 상관없는 공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성경 과목 성적을 위해 교회 출석 도장을 받아 와야 하는 과제가 주어졌다. 믿음도 없이, 성적 때문에 교회를 찾게 된 것이다. 그날, 교회 찬양대에서 울려 퍼지던 찬양이 바로 우리 학교 교가의 멜로디였다.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제야 알았다. 내가 익숙하게 부르던 그 선율이 찬송가였다는 것을…….그때 내 마음속에는 아직 ‘복음’이 살아 움직이지 않았다. 십자가도, 구원도, 은혜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순간에도 주님은 이미 조용히 내 마음에 믿음의 씨앗을 심고 계셨다. 그때는 알지 못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 부르던 그 멜로디 속에 이미 복음이 담겨 있었고,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사랑으로 오래 기다리기 시작하고 계셨다는 것을…….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스무 살에 인격적으로 주님을 만난 이후, 기도의 자리마다 이 찬양은 더욱 깊은 은혜로 내 안에 울려 퍼졌다. 이 찬송을 부를 때마다 십자가의 피가 무엇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은혜가 무엇인지를 가슴으로 고백하게 된다. 믿음은 언제나 이해로 시작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찬양 가운데 먼저 마음에 씨앗을 심어 두시고, 그 씨앗이 자라기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 주신다. 돌이켜 보면 나의 신앙의 시작은 설교가 아니었다. 아무것도 모른 채 불렀던 한 곡의 찬양이었다. 찬양은 나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오래된 기다림이었고, 때가 되어 믿음으로 자라난 은혜의 흔적이었다. 찬양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다. 마음에 심겨진 복음의 씨앗이며, 삶으로 고백하게 되는 믿음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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