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외와 경배의 자리: 교부들의 초대장
- M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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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페이튼 (James R. Payton Jr. 맥마스터 신학교, 교회사 교수)
제임스 페이튼 교수는 2021년부터 맥마스터 신학교의 역사신학 교수로 섬기고 있다. 그는 Redeemer University에서 30년간 교수직을 수행한 뒤 역사학 명예교수로 추대되었다. 또한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필라델피아), St. Stephen’s College(알버타 대학교), Evangelical Theological Seminary(크로아티아 오시예크), Matthias Flacius Illyricus Faculty of Theology(크로아티아 자그레브)에서도 강사 및 겸임교수로 가르쳤다. 제임스 페이튼 교수는 CAREE(Christians Associated for Relationships with Eastern Europe, 동유럽 관계를 위한 기독교인 협회)에서 사무총장(1998~2006)과 회장(2006~2011)을 역임했으며, 국가 무슬림-기독교 협의회(National Muslim-Christian Liaison Committee)에서는 2006~2021년 위원으로, 2008~2011년에는 기독교 측 의장으로 활동했다. 그의 학문적 전문 분야는 기독교 역사와 역사 신학이며, 특히 동유럽사, 동방정교회의 역사, 종교개혁 시대, 그리고 초기 교부학을 중심으로 오랜 기간 학계에 기여해 왔다.
번역: 박성민 교수(맥마스터 신학교, 목회신학교수)
모든 기고문의 한글판 번역으로 섬기신 박성민 교수에게 감사드립니다.
초대 교회는 사도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보존하고 전수하기 위해 힘써 왔습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몇 세기 동안에는 사도들의 이름을 내걸거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하는 다양한 문서들이 있었습니다. 교회는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저술들을 철저히 분별하고 검증하여 정경으로 수용하였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으로서 저는 이단의 가르침을 경계하고 사도 전통 신학을 보존하기 위해 애써 왔던 믿음의 선조들의 땀과 노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또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시기 위해 끊임없이 역사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섭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초대교회와, 일찍이 ‘교부’라 불리며 존경받아 온 탁월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교부들은 하나님에 관한 여러 잘못된 가르침에 맞서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습니다. 특히 하나님을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고백하는 방식은 매우 어려운 신학적 주제였지만, 교부들은 이를 세심하게 탐구하며 한 본질 안에 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교리를 올바르게 가르치기 위해 힘썼습니다. 또한 교부들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기독론, 곧 그분을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시고, 한 위격이신 분으로 고백하는 문제를 다루는 과정에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성육신하신 영원한 하나님의 아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두고 깊이 씨름했습니다.
초대교회와 교부들은 사도들에게서 전해 받은 기독교 전통 신앙을 수호하고 이를 후대에 전수하기 위해 가르침에 헌신한 신실한 주의 종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 선포 위에 신앙의 기초를 세우기 위하여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교부들과 더불어 역사 속에서 수많은 믿음의 선조들이 감당해 온 노고 덕분에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적 가르침을 이어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사도적 신앙이 시대를 넘어 현대 교회에 이어질 수 있도록 역사하신 주님의 보호하심과, 이러한 교리들을 믿고 알고 고백할 수 있도록 살아 역사하시는 주님의 인도하심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우리 프로테스탄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다양한 이유와 목적으로 ‘이해하고, 알고, 파악하고, 설명하는 것’에 때로는 지나치게 강조할 때가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삼위 하나님과 기독론에 관한 진리를 우리의 자녀들에게도, 새신자들에게도 가르쳐야 하며, 그것을 잘 가르치기를 힘써야 합니다. 전통신학은 참된 교회와 신앙의 기반이 되는 가장 중요한 뿌리와도 같기에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지만, 우리는 때때로 교리적 가르침과 신학적 설명에 강한 책임감에 몰두하게 되면서 초대교회와 교부들이 끊임없이 강조했던 중요한 사실을 놓치기도 합니다.
초대 교부들은 사도적 가르침을 연구하고 이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를 초월하시는 분이며, 인간의 제한적인 지성만으로는 하나님의 존재와 하나님의 역사의 신비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없다는 점도 함께 강조했습니다. 초대 교부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주님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시는 계시에 근원한다고 보았습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고 믿으며 확신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지성으로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때로는 하나님의 신비를 모두 다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믿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초대 교부들은 우리 하나님이 인간의 지성을 훨씬 넘어서는 초월적인 분이시기에, 우리가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경외하며 경배하며 사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참된 앎에 근본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의 한정된 생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초월적 전능자이심을 겸허히 인정해야 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낮추고, 무릎 꿇고 온전히 경배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의 출발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잠언 1장 7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거늘.” 단순히 지식을 쌓는 일이나 교리를 이해하는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을 알아가는 참된 지혜에 이를 수 없습니다. 참된 지혜는 바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신비와 거룩함 앞에서 마음을 낮추고 예배하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오래 전에 초대 교부들은 이러한 진리를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저작은 현대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전해졌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우리를 하나님의 임재와 깊은 만남으로 인도하는 초청장과도 같습니다. 이제 저는 교부들이 남긴 이러한 초청의 메시지를 여러분께 소개하며, 우리 모두가 그 초청에 귀 기울이고 응답하기 원합니다.
“하나님의 숭고함과 위대함은 인간의 표현 능력을 넘어선다.”— 리옹의 이레네우스, 《사도적 선포의 증명》 8장
“하나님은 마음으로도 헤아릴 수 없고, 이성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분이시다.”— 리옹의 이레네우스, 《이단 논박》 4권 19장 2절
“그분의 위대하심을 찾을 수 없듯, 그분의 선하심 또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다.”— 리옹의 이레네우스, 《이단 논박》 4권 20장 5절
“그분의 가장 작은 작품조차 이해할 수 없다면, 만물을 지으신 분을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교리 교육 설교》 6장 9절
“그러므로 하나님의 본성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 . 하나님의 본성을 자세히 살피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보고 있는 그분의 작품들을 통해 그분께 찬양과 영광을 올릴 수는 있습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교리 교육 설교》 9장 3절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 ‘계시니라’라는 말 밖으로 우리의 생각은 나아갈 수 없으며, ‘태초’라는 말을 넘어 우리의 상상도 뻗어나갈 수 없다.”—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 《성령론》 §14
“신적 본성은 인간의 이성으로 파악될 수 없으며, 우리는 그 모든 위대함을 마음속에 그려보는 것조차 할 수 없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신학 강론》 2권 11절
“우리가 그분께 다가갈 수 없기에 말씀이신 분이 우리에게 내려오셨고, 우리의 이해력의 낮은 수준에 맞추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우리에게 이해 가능한 말과 이름들로 신비를 전달하시고, 인간의 삶과 상황의 범주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하십니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팔복 설교》 2편
“우주를 초월하시는 분은 필연적으로 말 또한 초월하신다.”—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전도서 주해》 설교 7편
“하나님은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우리의 이해 능력에 맞추어 말씀을 조정하심으로써 연약한 우리의 본성이 그 의미를 붙잡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 《삼위일체론》 8권 43절
“하나님은 우리를 완전히 무지한 상태로 버려두지 않으셨습니다. . . 그분은 우리의 능력에 맞추어 자신에 대한 지식을 주셨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 1권 1절
[하나님에 대해 말할 때] “우리는 인간의 차원을 초월하는 것들을 인간적 언어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 1권 2절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진리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는 일에 힘쓰는 것은 물론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과정에서 본질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신앙의 본질은 지성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초월적인 하나님에 대한 참되고 바른 믿음은, 지성의 한계를 깨닫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경배하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갑니다. 시대를 넘어 오늘의 우리에게 말을 건네는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이렇게 초대합니다. “너를 너무나도 사랑하시기에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와 주님으로 보내 주신 성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자리로 들어가라.” 하나님께 응답하며 그분 앞에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면, 무엇보다 먼저 주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는 예배의 자리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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