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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환자는 처음이라, 그 두 번째 일기

  • Feb 12
  • 1 min read

김초희 목사(노스욕 열린교회)

사람이 넘어지는 것은, 큰 문제나 걸림돌 때문만은 아니다. 생각지 못한 낙심의 노출에 그냥 마음을 놓아버린다. 나에게는 낯설었던 병원 로비, 높은 천정 중앙으로 햇살이 들어왔다. 병원 로비에서 자신의 번호를 호명하기를 기다리는 사람들, 지하철에 마주 앉은 사람들처럼 상대를 관찰하다가 자주 눈빛이 마주하면 낙심한 마음이 훤히 보였다. 병원카드로 나의 번호를 입력하고 기다리다가 간호사의 호출에 키와 몸무게를 재고, 대기 순서표를 뽑아 피를 뽑는다. 3개의 플라스틱 병에 나의 이름이 명시되어 의사들이 체크하면 또 다른 파트의 간호사가 나를 부른다. 매주 한 번 맞는 키모- 12번, 그러나 2주는 약하게 3주째는 강한 키모여서 처음에는 7시간에 12개의 링거를 맞았다.


음식을 먹지 못하는 기간이 찾아오고, 2주가 지나자 머리카락이 빠지는데 움푹 손에 잡힐 만큼 사라졌다. 나는 머리를 짧게 밀었다. 마음속에 전쟁을 하며 마음은 밀리지 않으려고 설교를 붙잡았는데 그만 3주째, 설교 중간에 먹은 물을 토하고야 말았다. 그날 이후, 드문드문 나오던 워홀학생이 교회를 나오지 않았다. 눈물이 밥이 될 만큼 울고 나서야 나는 토요일만 되면 마음을 먼저 힘차게 하며 밥을 먹었다. 불안한 강단을 위해 전도사님을 준비시키고 주중에는 환자가 되었다. 3개월 동안 12번의 키모를 하는 동안, 한 주의 중간에 인적션(자가 면역주사)을 스스로 배에 놓았다. 처음에는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아이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매번 도움을 받을 수는 없었다. 캐나다 의료가 약값 외에는 모두에게 평등하다. 부자든 가난하든 무료이다, 그런 까닭에 정부에 세금 낸 것이 아깝지 않았다. 참 고마운 일이다, 넉넉하지 않은 나의 주머니 사정을 타국에서 해택을 주니 늦게나마 조금씩 행복해졌다.


2차 키모는 3주에 한 번 맞는 강한 키모였다. 의사는 늘 웃으며 잘 버티고 있다고 격려해 주었지만, 나는 2차 키모에 허덕이며 나이아가라 집을 갈 수 없을 만큼 힘들어했다. 토론토에 머물며 4번의 키모 중 세 번째에 냉증이 찾아와 온 몸이 차갑고 추운 경험을 했다 병원에서는 간호사를 집으로 보내주었다. 5일 동안 수액을 맞고도 정신을 차리지 못한 내가 ‘스톱‘ 을 외치자 병원에서는 중단하자며 여기까지 온 환자가 나뿐이라고……. 고생했다고 말해주었다. 진작 알려주지, 세 번째도 안했을 텐데…….


키모 부작용으로 나는 갑상선과 췌장이 나빠졌다. 몸이 아프니 생각지도 못한 일들이 터지기 시작했지만, 굴곡을 살아온 때문인지 두렵지는 않았다. 2달이 지난 뒤 나에게 수술 날짜가 잡혔다. 주위의 많은 분들이 기도해 주었고 이상하게도 교회는 조금씩 부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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