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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환자는 처음이라 - 세 번째 이야기

  • Feb 21
  • 1 min read

김초희 목사(노스욕 한인열린교회)


소리내어 기도할 수 없을 때, 나는 그냥 울기로 했다. 그래서일까…. 지나는 것들이 아름답고 찬란하다. 차를 타고 풍경들을 스치면 모든 것들이 소중하다. 세상은 여전히 아름답다. 하루하루가 행복하다. 비가 오면 비가 와서 좋고, 눈이 오면 온통 크리스마스 나무 장식이어서 좋다. 수술을 앞둔 날, 큰딸 아이의 첫 백일이었다. 두 딸아이가 도란도란 식탁에서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힘들어 작은 방에 누워있던 나는 갑자기 슬픔이 몰려왔다. 내가 떠나면 이렇게 살겠구나, 다행이다. 둘이니…. 그럼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표현할 수 없는 슬픈 생각들이 마음을 혼란하게 했다. 아이들을 못 볼까 봐 겁이 났다. 사랑은 자주 연약해진다. 나는 둘째 아이가 엄마 잘못될지 겁을 냈다는 사실을 수술 후에야 알았다. 아이는 나로 인해 병이 들었다. 마음에 바람이 들어온다.


유방암을 제거하기 위해 유방 수술 당일 의사에게서 유방암은 제거하지만 림프샘암은 다 제거가 될지 의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나는 수술실에 들어갔고 12명의 의료진은 하나님이 보낸 수호천사 같았다. 침대에 눕자 마취로 아무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술이 끝나 회복실에서 환자실로 왔을 때 큰 아이와 둘째 아이가 들어왔다. 나는 아이들을 꼭 껴앉아 주었다. “ 엄마 살았다” 둘째 아이가 눈물을 보였다. 며칠 후 의사를 만났을 때는 모든 암이 다 제거되었고 이제 암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는 마음을 놓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두 달이 지나서야 나는 방사선 치료에 들어섰다. 의사는 가볍게 말했다. 키모의 10/1 정도 그냥 스치는 치료라고…. 그러나, 키모 항암을 거친 나에게 15번의 방사선 치료는 수술보다 힘들었다. 밤에는 아파서 잠을 못 잤고 방사선은 나에게 암 치료가 무엇인지 뚜렷하게 남겼다. 7번의 치료 후 나는 그만두겠다고 의사에게 통보했다. 하지만 내 말은 통하지 않았고 작은 아이 대신 큰 아이가 나를 감당하면서 아이들을 위해 받아보자 생각을 바꿨다. 내가 아픈 후로 두 아이들의 잔소리는 더 많아졌다. 15번의 방사선을 마치고도 며칠간 밤에 잠을 자지 못하고 아파서 치료 부위에 거즈를 붙이고 병원에서 준 치료액과 알로에 젤을 듬뿍듬뿍 발랐다. 3주가 넘도록 먹지 못하는 날이 많아지고, 치료 부위는 불 속 같이 벌겋게 달아올라 진통제로 버텨야만 했다. 1년 동안 못 먹던 때문일까?? 부은 것이 빠지고 몸무게는 급속히 줄어들었다. 잠 못 드는 밤 나는 글을 쓴다. 시편 90편의 모세의 시처텀...“우리가 당한 고난의 날만큼, 우리가 당한 화만큼 우리를 기쁘게 하소서.” 그 소원이, 나의 기도이다. 암 환자는 처음이라 용감했던 항암치료와 수술, 너무나 겁이 났던 방사선 치료를 이제 지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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