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환자는 처음이라 - 네 번째 이야기
- Mar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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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희 목사(노스욕 한인열린교회)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는 보호색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운동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병을 앓고 난 지금도 운동은 걷기와 일하기이다. 참 재미없지만 책이 있어서 그 속에 정보들을 기억하고 활용한다. 항암과 수술, 방사선을 한 내 몸에 반신욕과 몸 안의 독소를 배출하는 음식과 소금물을 공급하고 있다.
방사선 치료가 끝난 어느 날 주부습진이 올라와 살을 찢었다. 나는 너무나 놀랐다. 친구가 사다 준 죽염을 따뜻한 물에 조금 타서 아침저녁으로 하루, 두 번씩 마셨다. 효능은 놀라웠다, 3일이 지나자 말끔해졌다. 그날 이후, 소금물은 나에게 약이 되었다. 체중이 줄었을 때도 내게 어지럼증을 줄여 주었다.
고통이 익숙해질 때, 우리는 평온했던 날들을 잊어 버린다. 방사선을 끝내고 나는 여전히 손이 굳는 통증과 수술 부위 통증이 일상이 되었다. 매일 갑상선을 조절하는 알약과 에너지를 낼 수 있는 알약, 가끔은 진통제를 복용한다. 손이 마비될 때는 따뜻한 물에 담그면 풀리곤 했다. 처음에는 류머티즘 초기일까? 두려웠지만, 방사선 치료 후 후유증으로 점차 줄어든다는 정보를 알고 안심했다. 몸의 부작용으로 인한 두려움들은 나이가 들면서 커지는 것 같다. 조금씩 좋아지는 증상들에 감사한다. 키모 항암을 하던 때를 돌아보면 어떤 환자들은 들어올 때부터 간호사와 죠크를 하며 웃고 책을 보는 환자들이 있었다. 내 마음까지 즐거웠다. 유머는 없지만 만나는 사람들에게 나는 힘있게 웃어 보였다. 내게 있던 콤플렉스 같은 완벽주의로 병원을 가든, 교회를 가든 언제나 동일하게 간단한 메이컵과 단정한 옷을 입었다. 습관이기도 했지만 낯선 나라에서 암 투병을 하는 나의 자존심이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환자 같지 않은 환자의 모습으로 병원을 가고 교회 강단에 섰다.
2차 항암 때, 항암으로 손톱과 발톱이 까맣게 타고, 눈썹과 속눈썹, 몸에 있는 모든 털이 빠진 꽁지 닭이 됐을 때, 두려움이 찾아왔다. 가발을 쓰고 그 위에 모자를 썼다. 그 여름날, 눈썹과 속눈썹이 없는 나에게 에어컨 바람으로 눈물이 멈추지 않아 화장이 지워지고 마음도 눈물을 흘렸다. 마음의 상처가 지워지도록, 삶은 나를 속여도 건강은 정직하다. 모든 것은 숫자들을 날리며 지나간다. 이제 머리카락이 다시 자라나고, 눈썹이 더 짙게 나왔다. 이마도 솜털이 나와 나를 안심시켰다. 손톱은 자라서 이제 까만 흔적은 사라지고 오직 느리게 자라는 발톱만이 추억처럼 조금 남아있다. 신기한 것은 머리카락이 빠지지 않는다. 아가들이 빠지지 않는 것처럼 빽빽하게 자라며 찬 공기에 노출되면 딸꾹질도 자주 한다. 나는 아이들과 농담삼아 신생아 엄마이니 잘 부탁한다고 웃었다. 신생아처럼 예뻐져서 공주병이 찾아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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