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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창조주 하나님 구원의 주를 만나다 (1)’

  • Mar 6
  • 1 min read

김수남 권사 (빌라델비아교회)


중학교 3년 동안 성경을 배웠다. 시험을 보면 늘 좋은 점수를 받았고, 이론적으로는 누구보다 성경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지식은 머리에 머물러 있었을 뿐, 가슴까지 내려오지는 못했다. 대학생이 되어 다시 교회에 가게 되었다. 주일학교 교사가 필요하다는 목사님의 말씀에 교사로 섬기게 되었다. 엄마처럼 사랑으로 돌봐 주던 언니의 마음을 기쁘게 해 주고 싶어서 순종했다. 나는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가르치는 일도 즐거웠다. 학생들도 나를 잘 따랐다. 그런데 마음이 불편했다. 나는 확신도 없는 하나님을 아이들에게는 너무도 자신 있게 잘 가르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양심에 찔렸다. 그래서 먼저 입을 열었다. “언니, 이번 금요 철야 예배에 나도 갈게.” 언니는 정말 기뻐했다. 그날 나의 기도 제목은 단 하나였다. “언니를 만나 주신 하나님, 저도 만나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이번 주일에 아이들 앞에 설 수 없습니다. 저를 꼭 만나 주세요”


언니는 보통 사람들과 달랐다.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동생 넷을 엄마처럼 품어 주던 그 사랑 속에서 나는 하나님을 보았다. 소도 비빌 언덕이 필요하듯, 언니와 형부는 우리 형제들에게 따뜻한 사랑의 언덕이었다. 시골에 살던 동생들이 하나둘 서울로 올라와 기대설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스무 살, 어느 금요일 철야 예배. 간절히 기도하는 가운데 ‘죄인’이라는 고백이 비로소 마음 깊은 곳에서 또렷해졌다. 나는 스스로 착하게 살았다고 생각했다. 연로하신 부모님 말씀에 토를 단 기억도 없고, 항상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알아서 농사일과 집안일도 잘 도왔다. 공부도 잘했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원만했다. 욕 한마디 해 본 기억도 없었다. 그래서 내 죄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예수님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런데 “저를 만나 주세요”라고 매달리는 순간, 기억의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중학생이 된 첫 여름이었다. 날씨가 흐려서 덜 마른 운동화를 온기가 남아있던 부엌 큰 솥 곁에 세워 두었다. 어머니가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던 중 작은 불티가 그 위에 내려앉았다.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짜증을 냈다. “이걸 어떻게 신고 가요!” 그 한마디가 어머니의 마음을 얼마나 아프게 했을지 그제야 보였다. 나는 울며 용서를 구했다. 반장이라는 이름으로 친구들에게 규칙을 엄하게 대했던 교만도 회개했다.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면서 주인 없는 사과밭에 들어가 떨어진 사과를 주워 먹었던 것도 생각나서 용서를 구했다. 작고 사소하다고 여겼던 일들이 줄지어 떠올랐다. 나는 울며 기도했다. “하나님! 모두 용서해 주세요~“ 그 밤 내가 생전 처음으로 하나님을 향한 온 마음에서 기쁘게 터져 나온 감사 찬양을 믿음의 고백으로 부르게 될 줄은 미처 알지 못했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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