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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년만의 해후

  • Feb 21
  • 1 min read

황로사(본보 주필. 수필 작가)


이렇게 오랜 세월 동안 못 만나리라는 건 예측하지 못했다. 교회 청년부에서 만나 늘 붙어 다니던 동년배 다섯 명의 친구는 지구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A는 미국 산호세, B는 밴쿠버, 두 명은 한국, 나는 토론토. 이렇게 사느라 함께 만난 지 세월이 훌쩍 지났다. ‘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속담처럼 '친하다'는 단어는 앨범 속에, 기억 속에 갇혀있을 뿐, 우리에게서 멀리멀리 날아가 버린 듯했다. 서로 사는 공간과 상황이 다르니 삶에 공통점이 없어 대화도 자연스레 겉돌았고, ‘잘 지내지?’로 시작해서 ‘언제 한번 봐야 할 텐데’로 끝나는 카톡 문자는 의례상 정해놓고 반복하는 문구 같았다. 해가 바뀌거나 특별한 날, 영혼 없이 보내는 이모티콘은 '나 아직 살아있어'를 알리는 신호에 불과했다. 지난 늦가을, 밴쿠버에 사는 B와 평소와 다름없이 형식적인 말만 하고 전화를 끊는 참이었다. 내가 스마트폰의 빨간 단추를 누르려다가 전화를 끊으려는 친구를 급히 불러내어, 요즘 생각하고 있던 말을 툭 꺼내놓았다. "00야. 난 요즈음 사랑이 뭔지 잘 모르겠어. '사랑스럽다'는 말은 손주들을 볼 때마다 갖는 감정이라 알겠는데 ‘사랑한다’는 단어는 느낌이 잘 오질 않아. 나에게 사랑이 없는 걸까”?


원래 생각이 깊은 편이었던 B는 세월 속에서 깨달은 경험이 내공으로 쌓인 건지, 정답같이 느껴지는 말을 즉답으로 내밀었다. '나이가 들면 사랑보다는 신뢰야. 아무리 사랑한다고 했어도 신뢰가 깨지면 사랑뿐만 아니라 믿음도 없어지고 관계도 어긋나버리는 것 같아.’ 공감이 연기처럼 내면으로 스며들어오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갑자기 밤을 새우며 이야기하고 싶다는 소싯적 감성이 기어 올라왔다. "00야, 너 산호세에 사는 A랑 여기 놀러 오지 않을래?" 내가 갑자기 내민 제안에 ‘우리 언제 만나야 할 텐데.’ 하고 습관처럼 말하곤 하던 B는 조금 당황한 듯하면서 ‘한 번 알아볼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 목소리에는 기대감도 물씬 담겨 있었다. 그리고 열흘째 되던 날, 세 명의 친구는 삼십 년 만에 토론토 피어슨 공항에서 만났다. 공항 출구 유리창이 열리며 나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는데 긴장감과 더불어 어색함이 살짝 나를 감쌌다. ‘옛날 그대로네’, ‘하나도 안 변했네.’ 같이 허울 덮힌 달콤한 말은 서로간에 할 처지가 아니었다. 삼십 대에서 세월을 건너 건너 칠십을 바라보는 나이에 다시 만난 우리는.


집에 도착하자마자 가방을 풀며, 자기네 사는 곳에서만 살 수 있는 특산품이라면서 과일 향 올리브유, 발사믹 식초, 낯선 포장지의 과자를 선물로 주섬주섬 꺼내놓는 친구들의 모습을 보니, 어린 날 할머니가 고쟁이 주머니에서 알사탕을 꺼내 주던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났다. 우리는 어느덧 그 나이의 할머니들이 되어있었다. 토론토에 처음 온 터라, 낮에는 나이아가라폭포와 CN 타워로, 딸네 집으로, 음식점으로 돌아다니다가 집에 돌아오니 피곤할 텐데도 우후죽순처럼 나오는 그 시절의 묵은 기억들과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들을 나누며, 밤이 깊도록 잠자리에 들어갈 생각들을 하지 않았다. 인생의 한 시절을 공유했던 기억 조각들. 세월의 더께 속에 갇혀있다가 줄 사탕처럼 줄줄이 매달려 나올 때마다 많이도 웃었지만, 아련함도 적지는 않았다. 생각이 다 나진 않아도 때로는 서운함에 삐져있고, 잠수 탔던 적도 있었건만, 시간이란 녀석은 안 좋은 기억도 풀무 불에 용해시켜 웃을 수 있는 추억으로 재생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A는 신학대학을 나와 교회 사역자로, B는 목회자 사모로, 나는 평신도로 살면서 세월이 각자 다른 방향으로 데리고 가는 바람에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았지만, 이제부터는 우리만의 공동 영역이 있다는 느낌이 조용히 나를 안심시켰다. 나흘 동안의 꿈같은 시간이 지나고 헤어질 때가 다가오자 아쉬움의 그늘이 마음속에 드리워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처럼 막연한 이별은 아니었다.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물꼬가 트인 헤어짐은 따뜻한 온도를 품고 있었다. 토론토, 밴쿠버, 산호세를 매년 돌아가면서 만나자고 했을 때, 한 친구가 제안했다. 우리가 거주하는 곳으로 정하지 말고 여행지를 정해서 해마다 가면 어떻겠냐고. 아무려면 어떤가.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같이 누리는 시간에 의미가 있지 않겠는가. 가늘어지다 못해 끊어질 것 같았던 옛 친구들과의 관계가, 우연찮게 나누었던 대화 한마디에 다시 끈끈하게 연결되었던 지난 가을은 그것만으로 넉넉했다. 삶의 감칠맛을 선물로 받은 계절이었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다. 오늘은 눈 폭풍으로 모든 학교에 휴교령이 내렸단다. 영하 30도의 기온에 끊임없이 내린 눈이 쌓여 온통 얼어버린 유리창 밖을 내다보다가 스마트폰을 꺼냈다. 추운 겨울이 없는 곳에 사는 친구들에게 하얀 설경을 보내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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