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일상
- Apr 18
- 1 min read
김치길 목사(빌라델비아교회)
더 이상 희망할 것이 없는 상태를 절망이라고 합니다. 조금이라도 희망이 남아 있다면 그것을 붙들면 되지만, 희망의 불이 완전히 꺼져버릴 때 사람들은 삶의 의미조차 잃어버립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처참하게 죽으셨을 때, 제자들은 지난 3년간 가졌던 모든 희망을 포기하고 깊은 슬픔과 절망에 빠졌습니다. 슬픔과 절망 가운데 무덤을 가장 먼저 찾은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 예수님이 살아나셨다고 전했음에도 여자들은 믿지 못하고 두려워 떨었습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제자들 역시 믿지 못했습니다. 여인들과 제자들의 모습은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죽음 앞에서 두려움에 휩싸이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딱 하나, 절망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막14:28)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천사는 “예수께서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전에 너희에게 말씀하신 대로 너희가 거기서 뵈오리라”(막 16:7)는 말씀을 여인들을 통해 제자들에게 전했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예수님의 빈 무덤에 초점을 맞추고 그 곁을 떠나지 못하고 있던 제자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갈릴리는 어떤 곳입니까? 갈릴리는 원래 제자들이 살았던 삶의 자리입니다. 그리고, 갈릴리는 제자들이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던 소명의 자리입니다. 또한 갈릴리는 주님과 함께 사역했던 사명의 자리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덤 곁에, 죽음 곁에 머물러 있지 말고, 원래의 삶을 자리, 소명의 자리,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부활은 철학이나 관념이나 개념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빈 무덤에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부르심의 현장에서, 섬김의 현장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인류는 무덤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이제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무덤을 향해 갈 이유가 없습니다. 인간에게 죽음은 슬픔이고 절망입니다. 그러나, 성도의 죽음은 소멸이 아닙니다. 이것은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확신입니다. 부활이 있기에 소망과 기쁨 가운데 삶의 자리, 소명의 자리, 사명의 자리에서 증인의 삶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