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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Amazing Grace)

  • Apr 2
  • 1 min read

장천득 목사


조금 철이 들어가는 걸까.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보이고, 영혼의 소리가 들려온다. 전에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오감으로 느끼기도 한다. 어르신들의 이마에 깊이 패인 주름과 거칠어진 손등의 의미, 조심조심 걸을 수밖에 없는 발걸음들, 손을 꼭 잡을 때 전해지는 그 따뜻한 온기, 커피 한잔할 때 전해지는 사람들의 체온.… 이제는 커피를 여유 있게 마시며 향을 음미한다. 급하게 서두를 필요 하나 없다. 서둘러 살아봐야 서둘러 죽으니까…. 살아 있는 동안 생명을 만끽하고, 생명을 위해 살고 싶다. 갓난아기의 살 냄새도 어찌 그렇게 향긋한지…. 한사람 한사람,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아름답다. 봄이 오면 어르신들이 꽃구경 길에 무슨 꽃이 그렇게 이쁘시길래…. 이제는 나도 그렇다. 겨울을 뚫고 나와 봄에 피는 꽃들은 경이롭다 못해 눈부시게 아름답다. 푸른 산과 언덕에 힘차게 솟구치는 생명력을 보면 내 마음에도 생명이 돋아나는 듯하다. 하나님은 생명을 참 좋아하시는 것 같다. 하나님도 나처럼 겨울을 싫어하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비록 죄로 인해 조금 얼룩지고 상한 부분이 있지만, 존재하는 것들은 존재 자체로 여전히 아름답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가끔 밥 한 끼 대접하겠다는 사람의 따뜻한 마음도 고맙다. 그냥 나를 믿고 마음을 열고 상담을 하겠다는 사람도 정말 고맙다. 별 볼 일 없는 나의 설교를 들어주는 성도들도 참으로 고맙다. 내게 아직 생명이 있다는 사실도, 작은 한 조각이라도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다는 사실도 그저 고마울 뿐이다. 특별히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복중의 복이다. 만남 속에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영적인 냄새가 난다. 그 사람만을 통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스토리를 듣고 있으면 압도적인 감동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때로는 감동적이며, 때로는 가슴이 아프며, 때로는 즐거운 이야기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날 때 요즘은 그 사람의 스토리를 통째로 듣고는 한다. 내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은 나에게 그분의 이민 스토리, 연애 이야기, 40년 목회 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열댓 번 하신 듯하다. 본인은 잘 모르신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재미있게 듣노라면 같은 이야기를 또 신나게 하신다. 그분의 이야기 속에는 깊은 곰탕 국물 우린듯한 진한 사람 냄새, 하나님 냄새가 난다. 그래서일까? 그분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어도 그렇게 질리지 않는다. 문득 떠오르는 생각이… “나는 어떤 냄새가 날까?” 아내는 나에게서 다른 무엇보다 ‘땀 냄새’가 많이 난다고 핀잔을 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목덜미에 향수(fragrance)를 뿌리고는 했다. 인공적인 냄새로 나를 감추고 덮어 버렸다. 인공적인 냄새보다 사람 냄새, 목사 냄새, 예수 냄새가 나야 하는데 나에게서는 어설픈 냄새가 나는 듯하다. 이민교회 35년 목회하고 은퇴하신 또 다른 원로 목사님의 말씀, “장 목사, 늙어는 봤는가? 나도 젊었던 적이 있었네” 그분은 이민교회의 수많은 질곡을 기쁨과 감사로 완주하셨다. 은퇴할 무렵에는 목사님과 사모님 모두 암으로 씨름하셨다. 항암치료 중에도 기쁨과 감사가 흘러넘쳐…. 두 분의 웃는 얼굴에 나는 힘들다는 찍소리도 못하고 따라서 웃고 말았다. 목회자가 될 때 난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얼 산 기도원에서 밤새며 “내 생명 드리리” 고백을 했건만…. 도마처럼 의심도 많고, 베드로처럼 물 위를 걷다가 허우적거리기도 하고, 구레네 사람 시몬처럼 억지로 십자가를 진 적도 있다. 하나님 앞에 한탄하던 나를 아직도 하나님이 불쌍히 여겨 주시니 참 감사한 일이다. 그리고, 내가 아직도 살아 있다니! 한없이 부족한 내가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니...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 (Amazaing Grace)다.


봄은 부활을 맞이하기에 최적의 계절이다. 벌거벗은 겨울나무에 드디어 벚꽃이 활짝 피었다. 십자가의 그 깊은 고독과 고통은 끝이 아니라 가장 위대한 생명을 잉태하기 위한 거룩한 산고(産苦)였다. 이제 봄의 소리, 시냇가의 역동적인 물소리, 생명의 소리가 온 숲과 대지를 압도한다. 절망과 죄악의 껍질이 깨어지는 자리에서 푸르른 생명이 피어난다. 죽음의 권세가 짓누르던 무덤의 돌문을 열고 우리 주님이 부활하셨다. 십자가가 허락했던 그 참혹한 상처는 영혼을 치유하며, 겨울 같던 세상에 봄날을 주신다. 마침내 만물을 소성케 하는 은혜의 발원지로 흘러넘치기 시작한다. 부활이 뿜어내는 압도적인 생명력, 십자가 위에서 대지를 적시며 조용히 흘렀던 그 붉은 피는, 어느새 얼어붙은 세상을 생기로 뒤덮고 푸른 신록으로 부활한다. 오는 주일 아침에는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싶다. 그리고, 승리의 노래, 부활의 노래를 불러야겠다. 오래된 나의 낡은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받고, 그리스도와 더불어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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