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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버스

  • Writer: 1018deut
    1018deut
  • Jan 12
  • 1 min read

김덕원 (목사/수필가)


2013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 둔 어느 날 이른 새벽, 전날부터 내린 눈이 무릎까지 올라오더니 급기야 단단히 맨 윈터부츠 틈바구니로 쏟아져 들어왔다. 마침 불어오는 칼바람은 턱 밑까지 올려 입은 방한복 이곳저곳을 마구 파고 들었다. 손에 아직 익숙하지 않은 장갑 사이로 흩어지는 입김은 희뿌연 이슬이 되어 눈썹에 맺혔다. 그렇게 그해 겨울은 매섭게 시작되고 있었지만 그 정도 추위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 큰 일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2012년 밴쿠버를 떠나 토론토에 도착한 지도 벌써 일 년이 지나갔다. 목회하는 동안 미뤄 놓았던 학위 논문을 마무리할 때쯤, 잔고가 마이너스 된 지 이미 오래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때마침 대형면허를 무료로 취득할 수 있게 해 준다는 광고를 접했다. 일 년 동안 스쿨버스를 운행해야 한다는 조건이 전부였다. 여름방학이면 아이들과 함께 미국과 캐나다를 여행하면서 대형 RV를 운전할 필요를 느끼던 차에 잘 되었다 생각하며 용기를 냈다. 처음 접하는 것들이라 당황스러운 일들도 있었지만 다행히도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마침내 신체검사와 신원조회를 마치고 대형면허도 발급받았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는가 싶었는데, 폭설로 온 세상이 덮여 운신조차 힘든 지경에 첫 운행이라니…  스쿨버스 주차장은 이미 대 혼란 그 자체였다. 노란색 버스는 온데간데없고 마치 왕릉만큼이나 큰 눈덩이들만 백여 개 남짓 보일 뿐이었다. 그 중 대부분은 시동조차 걸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각자 자기 버스의 눈을 치워 대는 사람들 틈바구니로 쌓인 눈을 연신 밀어대는 트랙터 소리가 요란했다. 내 버스를 찾는데 만도 이십분이 걸렸다. 아니나 다를까 시동은 걸릴 생각조차 없다. 이미 다른 차에 시동을 거느라 정신이 없는 직원들은 다급해진 나의 도움 요청엔 관심조차 없었다. 이리 뛰고 저리 뛰어 간신히 시동을 걸었을 땐 이미 한 시간이나 늦은 때였다. 그래도 어쩔 수가 없다. 예정된 코스를 돌아야만 했다.


큰 도로로 나가보니 주차장 소동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전날 시운전을 하며 익혀 놓았던 도로표지판은 온통 눈으로 덮여 분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작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상황은 더 심했다. 집집마다 쌓아놓은 스노우 뱅크는 좁은 도로를 더 혼잡하게 만들었고, 어디가 어딘지 분간조차 할 수 없는 도로는 미끄러지기 시작했다. 결국 전진도 후진도 할 수 없는 막막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렇게 반나절이 넘게 걸려 우여곡절 끝에 도착한 학교에는 내려줄 학생도, 반겨줄 교사도 하나 없이 고요하기만 했다. 얼마나 힘을 주며 온 몸으로 운전을 했던지 전쟁이라도 치른 듯 피곤이 몰려왔다. 캐나다 이민생활 중 이보다 더 간절하게 “꿈이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날이 있었을까?   


운전을 시작한지 삼 주 만에 담임목사로 부임을 했지만, 일 년을 봉사해야 하는 조건을 맞추기 위해 운전을 계속 해야만 했다. 그렇게 나와 가족을 위해 시작한 스쿨버스 운전이 손에 익어갈 무렵 교회는 운전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배려를 해 주었다. 하지만 내 눈엔 운전대를 놓지 못하게 할 또 다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에는 사역을 쉬고 있던 몇 명의 목사님들이 출석하고 있었는데 자꾸만 눈에 밟혔다. 토론토에 도착해서 처음 일 년 동안 사역을 쉬고 있었을 때 “한 명의 동역자라도 내 안부를 물어준다면 이렇게 외롭지는 않을 텐데…” 혼잣말로 중얼대던 생각이 났다. 그렇게 나는 그들과 작은 한 알의 콩이라도 나눌 요량으로 삼 년 더 운전을 했다. 어느덧 동료 목사님들은 각자의 사역을 찾아 교회를 떠나갔고, 더 이상 운전을 해야 하는 이유도 사라졌지만, 내 눈에 또 다른 이유가 보이기 시작했다. 때 마침 시작된 중미[도미니카와 아이티] 선교에 참여하기 위한 자금 마련이 그 이유였다. 물론 담임목사로서 선교 동원을 하는 것이야 주어진 의무였겠지만, 그 선교에 성도들과 똑 같은 조건으로 참여하는 것은 한 성도로서 나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멈추지 못한 운전으로 사 년의 세월이 또 지나갔다.


지금이야 남은 목회에 전념하기 위해 운전을 그만 두었지만, 눈보라 치던 그 겨울날 아침 시작되었던 한 목회자의 이중직은 기대하지 않았던 많은 선물을 남기고야 끝이 났다. 세상 안으로 들어오신 주님의 심정을 다 이해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망치질과 대패질로 보낸 삼십년 세월 속에 녹아든 세상에 대한 깊은 이해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더 절실하게 녹여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공생애를 시작한 예수님도 자기 고향을 지날 때면, 그 옛날 사람들과 함께 살아내던 삶의 현장, 그 목공소를 그리워하셨을까? 조금은 이른 첫눈을 맞으며 방금 지나간 노란색 버스를 한동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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