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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누어야 산다

  • Mar 23
  • 1 min read

박치명 목사(양문교회)


큰 시련의 파도를 꾸역꾸역 견디다가 2015년 새해를 맞았다. 예배 직전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도 힘들지만, 어려운 이웃교회들을 방문하면 어떨까?” 이런 제안을 교인들에게 하면 분명히 이런 반응이 나올 것이라 예상했다. “목사님, 지금 우리 꼴도 형편없는데 무슨 남의 교회를 신경쓰세요?” 이게 성령의 음성이 맞을까? 아니면 내가 너무 힘들어서 떠오른 잡념일까? 그러다가 교인들에게 번개 광고(?)를 했다. 아마도 교인들은 목사 혼자 하다가 말거라고 굳게 믿었을 것 같았다. 늘 목사는 혼자 감동받고 혼자 뭘 하다가 혼자 지치고 슬그머니 그만두는 일을 자주 하는 것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때부터 약 3년간 한 달에 한 주 오후에 이웃 작은 교회들을 방문했는데 자원하는 교인들과 함께 약 25개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렸다. 두 가지 원칙을 세웠다. 하나는 미리 말하지 않고 찾아가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헌금하고 목사님과 교회를 축복하고 오는 것이다. 갑자기 찾아갔지만 대부분 환영해 주셨다. 이웃교회와 함께 예배드리면서 하나님이 주신 은혜가 있었다. 첫째, 작은 교회 목사지만 말씀을 성심으로 전하셨다. 둘째, 소수라도 예배를 정성으로 드리셨다. 셋째, 함께 했던 우리가 더 큰 은혜를 받았다. 아, 주일마다 소수지만 마음을 다해 예배를 드리고 있는 교회들이 많구나! 직접 함께 예배를 드려보지 않으면 체험할 수 없는 은혜였다. 지나고 보니 이렇게 작은 나눔이라도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바닥에 떨어져 본 경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고은 님의 시가 생각난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실패를 해 봐야 실패한 사람이 보이고, 가난해져야 가난한 자가 보인다. 아파봐야 아픈 자가 보인다. 잘 나갈 때 보지 못했던 어려운 이웃교회들이 보였다. 그분들은 작지만 얼마나 열정으로 목회하는지, 얼마나 주님을 사랑하는지, 그러면서 얼마나 힘겹게 목회하는 게 보였다. 아, 나도 그런 때가 있었지! 조금만 잘 되면 눈이 먼다. 건방을 떤다. 선배도 가르치려고 한다. “내가 목회해 보니까…” 나눌 줄을 모른다. 아니 나눈다는 생각 조차를 안한다. 자기 교회만 배부르면 그만이다. “그럼 기뻐해야 하잖아요? 근데 하나도 기쁘지가 않은 거예요.” 카이스트에서 나눔 프로젝트를 실천하고 있는 배상민 교수의 말이다. 메이스시 백화점에 그가 디자인한 제품이 처음 발매되고, 1층을 다 차지하고 있는데도 전혀 기쁘지 않았다고 했다. “내가 올 때 몇 명 없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늘었어요.” 전임자는 깎아내리고 자기 자랑에 취해 있다. 내 목회는 기쁜가? 내 믿음 생활은 기쁜가? 나는 기쁨으로 일을 하고 있나? 아니 과연 하나님이 내가 하는 일을 기뻐하실까? “제가 매일 아름다운 쓰레기를 만들고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배 교수의 고백이다. 우리는 무슨 프로그램, 무슨 세미나, 무슨 행사를 한다고 야단들인데 혹시 이런 것들이 다 아름다운 쓰레기는 아닐까? 이중표 목사는 미래에는 나누어야 교회가 산다고 예언처럼 설교하셨다. 가진 자가 나누어야 함께 산다. 있는 자가 나누어야 함께 산다. 지구 반대편은 도와줘도 주변 이웃을 돕지 않으면 함께 망한다. 예수님은 나누신 분이다.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예수님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피를 나누셨다. 나누어야 생명이 있다. 나누어야 나도 살고 이웃도 살린다. 톰 라이트는 성찬을 장소의 개념이 아닌 “시간의 개념”으로 해석했다. 예수님이 주시는 떡과 포도주는 “성령의 신비한 역사를 통해” 지금 이 시간에 예수님과 함께한다고 했다. 솔로몬의 지혜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웃으면 복이 오고 나누면 더 큰 복이 온다. 오늘부터 커피 한잔 사는 것도 벌벌 떨지 말고 기분 좋게 대접해 보자. 나누어야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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