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보다 더 기독교적인”
- May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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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천득 목사 (밴쿠버 동산교회, 컬럼니스트)
선교팀을 이끌고 와서 원주민을 마주한 것은 1999년이었다. 처음 캐나다에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환상을 갖게 마련이다. 캐나다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살기좋은 나라, 기독교 선진국,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교적 열정이 있기도 했지만 설마했다. 그래도 캐나다인데…. 캐나다에 대한 선교적 상상력은 한방에 산산조각 났다. 처음 방문한 타클라랜딩, 타체 리저브는 밴쿠버에서 차로 13시간 들어가는 고립된 오지였다. 대부분의 리저브는 도로가 포장되지도 않은 곳에 소수의 원주민들이 고립되어 살아간다. 원주민 리저브는 사건사고, 자살과 중독등이 끊이지 않는다. 한번 리저브를 방문하면 단번에 알게 된다. 좁디좁은 비포장 도로에 인가도 없이 집들은 멀찍이 떨어져 있다. 알코올이나 마약을 한 무면허 운전자들이 가끔 비좁은 비포장도로에서 위험천만한 운전을 한다. 인도의 뱅갈로, 인도네시아, 태국의 카렌족… 여러 선교지를 가보았지만 캐나다만큼 선교하기 힘든 선교지는 없다.
캐나다처럼 복음이 폭력적인 방식으로 전해졌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얼굴을 마주하며 공존하는 곳이 있을까? 캐나다와 미국은 “식민지 선교”의 모든 실패가 집약된 곳이다. 캐나다에 건너온지 벌써 23년이 훌쩍 지났다. 캐나다는 선교하며 생존하는 자체가 쉽지 않은 곳이다. 돌아보면, 내가 안 죽고 살아 있는 것이 은혜이며 기적이다! 선교를 하며 영혼이 산산조각나는 듯한 고통과 영혼의 죽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을 몸으로, 경험으로 부딛히며 체험했지만… 대개 원주민들에 대한 일종의 선입견이 있는듯 하다. 대부분 부분적 경험으로 원주민 선교를 안다고 말한다. 필자는 사실 원주민들을 이해하고 싶어서 원주민 중독 재활센터에서 오랜시간 숙식을 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셀지도자 훈련, 제자훈련등 수많은 훈련을 했지만… 원주민들 상황(Context)에는 어느것 하나 맞지 않는다. 한동안은 중독자 모임( AA모임)에 미친척 참석도 했고, TWU대학원에서는 원주민들의 문화와 타협하지 않고 복음과 기독교 영성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할 수 있을까 연구하기도 했다. 덕분에 캐나다 복음주의 교단에서 본부사역을 하면서 영주권 문제를 해결받기도 했다. 원주민 형제들의 중독(Addiction)과 트라우마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독자 치유센타 모델과 의료저널(Medical research)을 박사과정에서 연구하며 프로젝트로 진행하기도 했다. 세상말로 원주민들을 섬기기 위해 영혼을 갈아 넣었다. 개인과 공동체, 모든 것이 깨어지고 병들고 망가진 지점에서, 기독교인들이, 교회가 학대와 살인, 생체실험을 한 그 지점에서… 어떻게 하면 원주민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온전히 회복되어 주님의 자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캐나다에서 23년 세월중 나름 15년여간은 선교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사명을 감당한 듯하다. 지금은 체력과 건강이 허락지 않아 전방에서 물러나 선교적 교회를 개척해 섬기고 있다. " 원주민 선교는 나 혼자 감당할 분량이 아니구나! "
사실 이땅의 주인인 원주민이 그렇게 무력하고 비참하게 망가진 것은 전적으로 100% 교회의 책임이다. 차라리 애당초 선교를 하지 않았더라면 싶다. 한번 고통과 상처를 준 트라우마는 좀처럼 회복이 되지 않는다. 더군다나 집단적 트라우마는 방법이 없다. 원주민들이 교회를 부수고 불태우는 것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일이다. 원주민들 입장에서 교회와 그리스도인, 선교사들은 살인자와 가해자 집단이다. 그 악몽과 트라우마를 우리가 “잊으시라. 용서하시라” 고 가해 당사자가 말한다면… 이는 또 한 번의 가스라이팅이다. 원주민 선교는 오직 하나님이 하셔야 한다. 정말 하나님만이 하시길 기도한다. 우리가 할수 있는 일이 원주민들에게 일방적인 복음전도보다는…… 함께 그들과 아파해 주고, 이 땅의 본래 주인이 그들이었임을 인정해주고, 원주민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겸손히 알려주는 일이다. 세입자 주제에 주인 행세를 해서는 안될 일이다. 우리가 힘으로, 돈으로, 우월감으로, 자부심으로 원주민을 찾아가서 던지는 얄팍한 말 한마디와 봉사활동으로는 원주민 선교는… 요원한 일이다. 우리의 선교방식은 지극히 “자본주의 방식”이다. 한마디로 복음적이지 않다! 우린 선교를 적정수준의 돈을 투자해 결과(output)를 찾고 효율성을 따진다. 원주민을 위한 선교가 아니라, 교회 자신이 만족감을 느끼는 선교를 할때가 참 많다. 겸손과 사랑으로 섬기기 보다는 있는 자가 없는 자에게 자비를 베푸는 방식이다.
물론 원주민들의 세계관은 기독교는 아니다. 원주민들에게는 수많은 영적의식과 전통이 있다. 그렇지만, 그들의 본래 삶의 의미와 가치는 기독교인보다 더 기독교적이다.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다. 공동체와 어른에 대한 존중, 방문한 손님에 대한 환대와 섬김, 신의 섭리에 대한 경외감과 겸손함, 타인을 가족처럼 여기는 형제애, 물질에 대한 욕심도 없다. 오니언레이크의 원주민 추장은 예수를 믿지 않지만,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너무나 좋아한다. 그들은 적어도 신에 대한 경외감, 피조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경쟁하며 시기질투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른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다. 아시아의 동양인처럼 명예와 영광에 그렇게 집착하지도 않는다. 세상에서 성공이나 출세, 돈이나 권력을 탐하는 자본주의 영성을 찾아볼 수 없다. 모든 피조물이 신으로부터 왔고 신에게 돌아간다는 자연주의 영성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자연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피조물을 귀하게 돌보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기독교인은 아니지만, 사실 원주민들의 삶의 지혜와 태도를 보면서 나는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우린 복음적인 삶을 온전히 살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 입장에 있다. 오직 주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구한다. 하나님이 일하셔야 한다. 하나님은 원주민을 사랑하신다. 압도적인 사랑의 파도, 치유와 회복의 은혜, 성령의 쓰나미가 원주민들에게 임하길 간구한다.
<수우족(Sioux) 원주민의 기도문>
“ 바람 속에 당신의 목소리가 있고, 당신의 숨결이 세상 만물에게 생명을 줍니다.
나는 당신의 많은 자식들 가운데 작고 힘없는 아이입니다. 내게 당신의 힘과 지혜를 주소서. 나로 하여금 아름다움 안에서 걷게 하시고
내 두 눈이 오래도록 석양을 바라볼 수 있게 하소서. 당신이 만든 것들을 내 손이 존중하게 하시고 당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내 귀를 열어 주소서. 당신이 우리 선조들에게 가르쳐 준 지혜를 나 또한 알게 하시고,
당신이 모든 나뭇잎, 모든 돌 틈에 감춰 둔 교훈들을 나 또한 배우게 하소서.
내 형제들보다 더 위대해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가장 큰 적인 내 자신과 싸울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소서. 나로 하여금 깨끗한 손, 똑바른 눈으로 언제라도 당신에게 갈 수 있도록 준비시켜 주소서. 그래서 저 노을이 지듯이 내 목숨이 사라질 때 내 혼이 부끄럼 없이 당신 품안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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