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남긴 마지막 믿음 - 산등성이에서 들려온 영원의 소식
- Aug 21
- 2 min read
주재식 선교사(세계 순회 의료 복음선교사)
열대 지방의 산등성을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고산 마을로 스며든다. 뜨거운 평지에서 올라온 바람은 이곳에 이르러 한결 시원해진다. 그 바람을 따라 산 정상에 마련된 총회 장소로. 각 지역의 총대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선교지에서는 이런 모임이 있을 때면 자연스럽게 작은 진료소도 함께 세워진다. 몇몇 동역자들은 마을로 내려가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서고, 또 어떤 이들은 소식을 듣고 스스로 산길을 올라온다. 그날도 한 사람이 차에서 힘겹게 내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십 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 남자였다. 그의 몸은 심하게 부어 있었다. 신장의 기능이 크게 약해진 탓이었다. 온몸이 마치 솜사탕처럼 부풀어 있었고 숨은 가늘게 이어지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마음속에서 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알고 계시는 분은 오직 주님뿐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는 남아있는 기력을 모아 조용히 말을 꺼냈다. “여기까지 찾아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속에서 기도가 흘러나왔다. “주님, 제 손끝에 들린 이 침이 주님의 능력이 흐르는 통로가 되게 하소서.” 나는 그의 몸과 마음을 살피며 치료를 시작했다. 선교지에서의 진료는 언제나 단순한 의료 행위만은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드리는 작은 순종의 시간이기도 하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굳어 있던 몸의 긴장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경직되어 있던 얼굴에도 조금씩 평온이 찾아오는 듯 보였다. 몸의 긴장이 풀리면서 마음도 함께 열리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때였다. 그의 입에서 뜻밖의 고백이 흘러나왔다. “예수님을 믿고 싶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하나님께서 한 영혼을 위해 준비해 오신 시간이 지금 이 자리에서 열리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 순간 나는 다시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게 된다. 우리는 단지 이 땅에서 잠시 살다가 사라지는 존재로 지음받은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영원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존재로 창조하셨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는 일이다. 그 보이지 않는 것들의 실상이 바로 이 고백 속에서 드러나고 있었다. 치료를 마친 뒤 그는 다시 차에 실려 집으로 돌아갔다. 산길 아래로 멀어져 가는 그의 뒷모습은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보다 훨씬 밝아 보였다. 그날 이후 몇 달의 시간이 흘렀다. 나는 다시 그 나라로 부르심을 받고 순종하여 선교지에 오게 되었다. 그때 한 동역자가 내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그 환자 기억하시지요? 병원에서 그분을 만났습니다. 그분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선교사님이 다시 오시면 고산지에 있는 우리 집으로 꼭 모시고 와 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에 잔잔한 설렘이 일었다.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마침내 그의 집을 찾아갔다. 산길을 따라 올라가 도착한 집에는 나뭇가지 몇 개를 엮어 만든 작은 문이 달려 있었다. 나는 그 문 앞에 서서 안을 향해 큰 소리로 불렀다. “알베르또 형제님! 알베르또 형제님!” 기대에 찬 마음으로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 잠시 후 어두운 집 안에서 한 중년 여인이 걸어 나왔다. 그러나 그 사람은 알베르또 형제가 아니었다. 그 여인은 잠시 나를 바라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그는 여기 없습니다. 하나님 품으로 가셨습니다.” 순간 마음이 멈춘 듯했다. 그러나 여인은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죽기 전에 이렇게 부탁했습니다. ‘내가 죽으면 기독교 장례로 보내 주세요.’” 우리는 그의 부탁대로 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그 자리에서 감사의 마음으로 주저앉고 말았다. 그때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생각이 조용히 떠올랐다. 나는 그를 다시 만나지 못했지만, 그는 이미 내가 바라보는 그 영원 안으로 먼저 들어가 있었다.
주님의 계획은 언제나 우리의 생각보다 깊고 완전하다. 한 영혼이 영원을 향해 문을 여는 순간을 하나님께서 내 눈으로 보게 하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바라볼 때 선교의 사명은 더욱 귀하게 다가온다. 산등성이에서 시작된 작은 만남이 영원의 이야기로 이어졌음을 바라보며 나는 다시 고백한다. 나의 선교도, 이 산등성이의 사역도, 모두 주님께 속한 것임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는 것까지도 믿게 하시는 그 주님의 사랑을 마음에 품고 나는 다시 산길을 내려온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