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신여행
- 1018deut

- Jan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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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로사(작가)
캐나다의 전형적인 겨울 날씨답게 한파 경보가 내렸던 날, 토론토를 떠나 나이아가라로 향했다. 며칠간 딸과 두 손주를 데리고 워터 파크가 있는 곳에서 지내고 오기로 했다. 사실은 사위에게 자유 시간을 주기 위한 피신 여행이었다. 어느 모임에서 사위가 혼자의 시간을 좀 갖고 싶다는 마음을 슬쩍 비쳤단다. 그 말을 전해주는 딸에게 아이들과 잠시 어디든 다녀오자고 제안했다. 직장에 다니며 집에 돌아오면 육아까지 도와주어야하니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을 텐데 그것을 읽어주지 못했었구나……. 싶었다. 어린 아기는 우는 것으로 자기의 의사를 나타내듯이, 누구든 말이나 행동으로 표현한 것은 마음을 비추는 것이므로,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간과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이민 와서 마음이 울적할 때마다 운전대를 잡고 찾아오던 곳. 넓은 땅에서 자연을 즐기며 자유롭게 살 것을 상상했던 이민의 삶은 첫 발부터 부딪혀 해결해 나가야 할 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원주민 언어로 '천둥소리'의 의미를 갖고 있는 나이아가라 폭포가 내는 우레와 같은 소리를 듣다 돌아오면 부유하던 생각과 불안한 마음이 어느 정도 가라앉고는 해서, 내 마음을 달래는 장소로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12월의 나이아가라는 세계적인 관광 명소답게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마음껏 드러내고 있었다. 한 쪽에선 얼음 안개를 뿜어내며 겨울 폭포가 맹렬하게 쏟아져 내리고, 다른 한쪽은 화려한 네온사인 장식이 끝없이 펼쳐져 시선을 끌었다. 손자들에게 나비 박물관과 폭포의 야경을 보여주고 나니 오랜 시간 운전하고 온 피곤함이 몰려왔다. 밤에 자는데 둘째 손자가 왜 그리 자주 깨는지. 아침에 일어나기가 힘들어 몽롱한 채로 있으니, 잘 자고 일어난 첫째 손주가 놀자고 흔들어댔다. 내게는 낡은 기억 속에 묻혔지만 딸과 사위가 매일 겪으며 정신없이 지내는 장면들을 몸소 실감하며 머릿속에 담고 있는데 카톡이 '땡'하고 울렸다. '오랜만에 꿀잠을 잤어요. 먹고 싶은 것을 사먹으러 가기도 하고, 자유로운 시간을 잘 누리고 있어요. 앞으로 더 잘 하는 사위가 될게요.'
자신을 닮은 사람은 본인이 잘 알아보듯이, 사위는 평소에도 내향성인 나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때 내성적, 외성적이란 단어와 내향성, 외향성을 같은 줄로 착각했었다. 서로 공통적인 점이 있긴 하지만, 전자는 성격을 말하고, 후자는 힘을 얻는 방향을 의미한다. 내성적인 사람은 남에게 말하기보다는 혼자 생각하고 삭이는 경향이 있으며, 이목이 집중되는 것을 불편해한다. 외성적인 사람은 모임의 주도적인 역할을 즐겨하며, 많은 사람 만나는 것을 선호하는 것처럼 성격과 행동면을 말한다. 외향성인 사람은 여러 사람 앞에서 자신의 표현을 발산할 때 에너지를 얻는다. 반면에 내향성인 사람은 혼자 있을 때 에너지를 얻고 그 힘으로 살아가는 유형이다.
성격검사인 MBTI(Myers–Briggs Type Indicator)를 해보고 나서 내가 극내향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반되는 유형도 어느 정도 섞여있게 마련인데 나는 유난히 내향성에 치우쳐 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있거나 대화가 겉도는 모임에는 시간이 아까운 생각이 들어서 가능하면 나가지 않는다. 나무 그늘 같은 조용한 곳에 혼자 있거나, 편한 사람 한 둘하고 같이 있을 때가 좋다. 나의 그런 외골수 같은 모습을 고쳐보려고 외성적인 모습으로 가장하고 행동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얼마나 허전하고 자괴감이 들던지, 천성대로 살기로 다짐한 적이 있다.
내향성의 사람에게 침묵과 고독은 진정한 휴식이고 살아가는 수단이다. 영혼이 자유로운 노마드가 되기도 하고, 불순물처럼 위선과 허울을 섞었던 날에는 밤새 뒤척이기도 한다. 남과 잘 어울리지 않는 것이 사회생활 면에 적응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대가가 외로움일지라도 내면의 곳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감내해야 할 부분이다.
호텔에서 체크아웃을 하고 로비에 앉아 사위에게 카톡을 보냈다. 'Men's cave 라는 게 있대. 동굴 속에 혼자 있고 싶은 시간을 말하는 거겠지. 나는 그런 시간이 누구에게나 필요하다고 생각해.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내적으로 충전하는 시간. 언제라도 필요하면 이야기해. 나도 귀여운 손주들과 시간을 같이 보내니 좋네. 도착할 때까지 그 몇 시간도 맘껏 자유로움을 만끽하길…….'
떠날 때 맵차던 한추위는 사그라들고 유리창 밖은 봄날 같은 햇살로 반짝거렸다. 차 안에 조용하게 흐르는 음결 속에서 아이들은 잠이 들었다. 쉼표가 없던 여행이 느낌표로 여운을 남긴다. 토론토가 가까워올수록 몸은 꺼질 것 같이 노곤해지는데, 마음은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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