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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회의

  • Mar 23
  • 1 min read

홍경숙 사모(‘사랑의 고삐로’저자)


우리는 애들을 기르면서 종종 “가족회의”를 열었다. 무슨 특별한 안건이 있어서가 아니였다. 대략 한달에 한 번 꼴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난 후 배가 부르고,기분이 좋고, 편안할 때 모였다. 애들에게 숙제가 많거나 시험을 앞둔 때는 피했다. “얘들아, 가족회의 하자!”라고 부르면 얼마나들 기분좋아 하는지 눈을 반짝이며 달려왔다. “저 위에 있는 커다란 아빠와 엄마, 그리고 저 밑에 있는 쬐그만 우리들”이 아닌, 당당한 가족의 일원으로 존중받는 것이 그렇게도 뿌듯했었나 보다. 그리고는 이것저것 생각나는 대로 함께 얘기를 나누었다. “아빠가 그저께 기분이 언짢던 터라  공연히 목소리가 올라갔었는데 용서해라. 미안!” “얘들아, 우리 가정 경제는 지금 이렇게 돌아가고 있단다. 우리집 모기지가 $___ 남아 있고, 매달 은행에다 $___씩 갚아 나가거든. 그리고 한달에 식비는 $__쯤 들어.” “엄마, 지난주 제가 방문을 탁 닫고 들어간 날 있었지요? 실은 그날 학교에서 친구한테 섭섭한 일을 당했어요. 괜히 기분이 상해서 무례하게 행동했는데 죄송해요.” “너희들이 이제 틴에이저가 되었는데 규칙을 정해야 되지 않겠니? 너희들의 외출 후 저녁 귀가 시간을 몇 시로 정할까?” “10시반요.” “간혹 친구 집에서 파티가 있을 수도 있고, 교회 중고등부 저녁 모임도 있는데 그건 좀 이른 것 같잖아?” “아뇨. 우린 아직 어리고 밤 늦게 다녀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해요. 10시반이 적당해요.” “그럼 규칙을 어기고 늦게 들어오면 어떡하지?” “그야 당연히 벌을 받아야지요.” “그럼 어떤 방법의 벌을 택할까?” “일주일 동안 전화 사용을 금하세요.” (그때는 핸드폰이 없었고, 막 사춘기에 접어든 우리 딸들은 방과 후면 친구들과 조잘대느라 전화 통을 붙들고 살다시피 했다. 전화 사용 금지는 형량으로 치면 중형에 속했다.) “그건 좀 심하다.” “아뇨. 규칙을 어겼으면 그만한 벌은 받아야죠.” “정말 괜찮겠어?” “그럼요.” 그런데 얘들이 규칙을 어기고 밤11시 가까이에 집에 온 적이 두번 있었다. 금요일 저녁 교회에서 중고등부 모임이 끝나면 교사들이 자기 차로 여러 명의 애들을 집까지 태워다 주었다. 마지막으로 차에서 내린 아이들이 우리 딸들이었고, 그날은 예상보다 늦어져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너희들의 잘못이 아니니 벌을 안 받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규칙은 규칙이라고 우기면서 자진하여 일주일간 전화 사용을 안 했다.

우리는 살면서 애들에게 솔직한 우리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길 원했다. 부모도 때로는 실수를 범하고, 용서가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이해하는 게 오히려 좋을 것 같아서였다. 어떤 때는, “오늘 엄마와 아빠간에 의견 충돌이 있었거든. 아직도 둘 다 화가 안 풀려서 화해가 쉽지 않네. 너희들이 우리를 위해서 기도 좀 해줄래?”  “네, 그럼 우리 같이 기도해요. 하나님 아버지, 우리 엄마 아빠가….” 이런 식으로 기도를 받았다.

세월이 흐르고 남편은 80대의 할아버지, 나도 뒤따라 가는 할머니가 되었다. 우리 어린 손자들은 우리 곁에 앉아 함께 얘기하는 걸 아주 즐겨했다. 우리가 자기들의 엄마, 아빠와 함께 재미도 지독하게 없을 세계의 정치, 경제, 역사를 장시간 얘기해도 얘들은 끈질기게 우리 곁에 앉아 경청했다. 나의 다리를 붙들고 “I want to marry grandma!”라고 귀염을 떨어 내 간장을 녹이던 꼬맹이도 이제는 대학생이 되었다. 얘들이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고, 대학생 모임에서 성경공부도 인도한다. 걔네 아빠가 올려다 보도록 커버린 지금에도 손자들은 우리와 얘기하는 걸 꽤나 좋아한다. 참 기쁘고, 고맙고,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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