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통철심부(痛徹心腑)

Sep 11
3 min read

목사/수필가 김덕원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떠난 아이를 위한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문은 시간이 지나도 닫히지 않았다. 그렇게 4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24년 어느 봄날, 몇 년 만에 부모님을 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 보는 순간엔 가슴이 찡하다. 몇 해 만에 다시 마주한 부모의 얼굴은 세월이 한꺼번에 지나간 듯 늙어 있어, 자식은 그 변화를 낯설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다시 익숙해질 무렵, 두 분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무엇 때문일까? 몹시 궁금했다. 어머니가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몇 년 동안 앞서 보낸 자식의 무덤에 못 간 것이 몹시도 서운했던 모양이다. 1980년 늦겨울, 막 중학교 졸업을 앞둔 큰아들은 어렸을 적 치료하지 못한 중이염이 뇌막염으로 발전하면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벌써 44년 전 일이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품 안의 자식으로 남아 있었다.


통철심부(痛徹心腑)란 말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는 고통이란 의미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처럼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버렸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이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간다”는 말이 있다. 잘 사는 듯 보였지만,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나 보다. 아버지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었다. 당신도 나이가 드니 부모님 묘조차 돌보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무슨 낯으로 자식 무덤에 갈 수 있었겠는가! 두 분 모두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다 이해될 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사태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만한 여유마저 빼앗아 갔다. 뭔가 묘책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좋은 묘책이 떠올랐다. 그 아들의 유골을 조부모 곁으로 이장하면 될 일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아버지와 매부에게 부탁하여 이장을 하기로 했다. 44년이나 지난 열다섯 살 소년의 유골이니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삽 몇 자루와 수건, 그리고 가던 길에 구매한 작은 토기 항아리가 전부였다. 팬데믹 상황에 돌보지 못한 이유 때문인지 밭 가장자리에 있던 조그마한 공동묘지에는 풀이며 가시덤불들이 뒤엉켜 도무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무덤에 비해 처음부터 작게 만들었던 그 봉분은 이리저리 깎여 나가 쉽사리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봉분 앞에 쇠 말뚝으로 표시해 두었다던 아버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날부터 세상을 두 겹으로 본다고 한다.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떠난 아이가 있는 세상이다. 그 세상은 항상 그 아이를 묻어 놓은 곳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세 사람은 한 곳을 지목하여 삽질을 시작했다. 한 가닥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우리도 어렴풋이 예상하던 결과였다.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다 성장하지도 못한 소년의 몸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텨냈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서운한 마음 구석에 이른 가을바람이 스쳐 갔다. 우리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 그 소년을 품은 흙을 항아리에 담았다. 어머니의 가슴은 잃어버린 자식을 향해 평생 문을 열어 둔다. 그날 밤엔 혹시 몰라 아예 두 짝 문을 다 열어놓았었나 보다. 간밤엔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고 했다. 그리워하던 자식이 항아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 조부모님이 묻혀 있는 선산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형보다 몇 해 먼저 가셨으니, 곧 오십 년이 가까워 온다. 온 마을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그 앞쪽으로 강이 흐르는 것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묘지는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 했었는데, 이젠 그 누구의 발걸음조차 드물다. 어쩌면 조용한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할아버지가 묻힌 곳으로부터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항아리를 묻었다.

그날 저녁 내 옆에 살짝 다가온 어머니는 여전히 긴장된 어투로 말을 건넸다. “고맙구나. 할아버지 곁에 있다고 하니 이제야 마음에 놓이는구나!” 44년 동안 어머니의 슬픔은 소리 없이 흘렀지만, 그 깊이는 바다보다 더 깊어진 듯했다.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도 그 흙이 자식의 분신이라 믿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Comments


newlogo_port_dark.png

기사제보 및 구독문의

647.888.8745

81 Curlew Dr. Toronto, ON M3A 2P8 2층

editor@kmissioncanada.ca

  • Instagram
  • Facebook
  • Youtube

© 2026 by Mission Canada. Design by Deut Design

미션 캐나다는

주간신문과 방송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며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는 미디어 선교단체입니다.

크리스천 기업 '광고주'를 기다립니다.

선한 영향력으로 시장을 물들이는 크리스천 CEO를 기다립니다. 공감과 신뢰를 바탕으로 든든한 믿음의 파트너가 되어드릴, 미션캐나다와 함께 세상을 향해 선한 가치를 전파하세요.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