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철심부(痛徹心腑)
목사/수필가 김덕원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떠난 아이를 위한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문은 시간이 지나도 닫히지 않았다. 그렇게 4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24년 어느 봄날, 몇 년 만에 부모님을 뵈었다. 언제나 그렇듯이 처음 보는 순간엔 가슴이 찡하다. 몇 해 만에 다시 마주한 부모의 얼굴은 세월이 한꺼번에 지나간 듯 늙어 있어, 자식은 그 변화를 낯설게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며칠이 지나 다시 익숙해질 무렵, 두 분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는 것을 감지했다. 무엇 때문일까? 몹시 궁금했다. 어머니가 먼저 속내를 드러냈다. 지난 몇 년 동안 앞서 보낸 자식의 무덤에 못 간 것이 몹시도 서운했던 모양이다. 1980년 늦겨울, 막 중학교 졸업을 앞둔 큰아들은 어렸을 적 치료하지 못한 중이염이 뇌막염으로 발전하면서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벌써 44년 전 일이지만 어머니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품 안의 자식으로 남아 있었다.
통철심부(痛徹心腑)란 말이 있다. 마음속 깊은 곳까지 꿰뚫는 고통이란 의미다. 세상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일상처럼 돌아가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시간은 그날에 멈춰 버렸다. “어머니는 잃어버린 아이를 잊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를 품고 살아가는 법을 배워 간다”는 말이 있다. 잘 사는 듯 보였지만, 어머니도 그렇게 살았나 보다. 아버지도 나름대로 입장이 있었다. 당신도 나이가 드니 부모님 묘조차 돌보기 힘들어진 상황이었다. 그러니 무슨 낯으로 자식 무덤에 갈 수 있었겠는가! 두 분 모두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고, 다 이해될 만한 일들이었다. 하지만, 지난 몇 년간의 코로나 사태는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만한 여유마저 빼앗아 갔다. 뭔가 묘책이 필요했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밤새 뒤척이다 아침이 되어서야 좋은 묘책이 떠올랐다. 그 아들의 유골을 조부모 곁으로 이장하면 될 일이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아버지와 매부에게 부탁하여 이장을 하기로 했다. 44년이나 지난 열다섯 살 소년의 유골이니 어렵지 않으리라 생각되어 간단하게 하기로 했다. 삽 몇 자루와 수건, 그리고 가던 길에 구매한 작은 토기 항아리가 전부였다. 팬데믹 상황에 돌보지 못한 이유 때문인지 밭 가장자리에 있던 조그마한 공동묘지에는 풀이며 가시덤불들이 뒤엉켜 도무지 길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게다가 다른 무덤에 비해 처음부터 작게 만들었던 그 봉분은 이리저리 깎여 나가 쉽사리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봉분 앞에 쇠 말뚝으로 표시해 두었다던 아버지도 그 흔적을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난감했다. 어머니는 자식을 잃은 날부터 세상을 두 겹으로 본다고 한다. 하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상이고, 다른 하나는 떠난 아이가 있는 세상이다. 그 세상은 항상 그 아이를 묻어 놓은 곳을 향할 수밖에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찾아 헤매다가, 결국 세 사람은 한 곳을 지목하여 삽질을 시작했다. 한 가닥 희망으로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우리도 어렴풋이 예상하던 결과였다. 아무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아직 다 성장하지도 못한 소년의 몸이 그 긴 세월을 어떻게 버텨냈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도 거기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데, 서운한 마음 구석에 이른 가을바람이 스쳐 갔다. 우리는 흙에서 나와 흙으로 돌아간 그 소년을 품은 흙을 항아리에 담았다. 어머니의 가슴은 잃어버린 자식을 향해 평생 문을 열어 둔다. 그날 밤엔 혹시 몰라 아예 두 짝 문을 다 열어놓았었나 보다. 간밤엔 잠이 오지 않아 한참을 뒤척였다고 했다. 그리워하던 자식이 항아리 안에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뒤숭숭했던 모양이다.
이른 아침, 조부모님이 묻혀 있는 선산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형보다 몇 해 먼저 가셨으니, 곧 오십 년이 가까워 온다. 온 마을이 눈앞으로 펼쳐지고, 그 앞쪽으로 강이 흐르는 것을 다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 뒷산 중턱에 있는 묘지는 모두의 부러움을 살만 했었는데, 이젠 그 누구의 발걸음조차 드물다. 어쩌면 조용한 게 나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며, 할아버지가 묻힌 곳으로부터 두 걸음쯤 떨어진 곳에 항아리를 묻었다.
그날 저녁 내 옆에 살짝 다가온 어머니는 여전히 긴장된 어투로 말을 건넸다. “고맙구나. 할아버지 곁에 있다고 하니 이제야 마음에 놓이는구나!” 44년 동안 어머니의 슬픔은 소리 없이 흘렀지만, 그 깊이는 바다보다 더 깊어진 듯했다. 신앙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도 그 흙이 자식의 분신이라 믿어서도 아니다. 그저 그것이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머니의 마음이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도 그런 것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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