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분’이 아닌, ‘나’라는 한 사람을 붙드신 하나님– 선교사의 고백
주재식 선교사(세계 순회 의료복음선교사)
나는 한때 나 자신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어 이해하며 신앙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기도하는 시간의 나는 하나님께 가까운 ‘영적인 나’였고, 일상의 근심에 짓눌린 나는 ‘믿음이 부족한 나’였으며, 분주함 속에 허둥대는 모습은 그저 어쩔 수 없는 ‘인간적인 나’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인으로서의 정체성 또한 다르지 않았다. 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로서 기술은 세상적인 영역이고, 선교사로서 복음을 전하는 일은 영적인 영역이라 분리해 생각하곤 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설 때면 늘 ‘정리된 모습’만 보여드리려 무척이나 애를 썼다. 기도할 때는 정제된 언어만 골랐고, 헌신을 다짐할 때는 결단력 있는 마음만 내보이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조각난 나의 모습 속에 나를 가두어 두지 않으셨다. 어느 날, 선교지에서 말씀을 붙들고 서 있던 시간 속에 하나님의 빛이 예고 없이 파고들었다. 세련된 문장 뒤에 숨겨두었던 서운함, 사역이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했던 욕심, 스스로도 외면했던 깊은 두려움이 그 빛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그때 비로소 깨달았다. 하나님은 내 삶의 고장 난 부품 하나를 고치러 오신 수리공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 전체를 만나러 오신 아버지셨음을 말이다.
주님은 이미 알고 계셨다. 경건하게 기도하려 애쓰던 나도, 남몰래 마음이 무너져 내리던 나도, 침을 놓으며 환자의 환부를 살피던 한의사인 나도 모두 주님 앞에 서 있는 동일한 ‘한 사람’이었다. 신앙은 영역을 나누어 관리하는 기술이 아니라, 존재의 모든 파편을 가지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여정이었다. 주님은 나의 거룩한 기도 시간에만 머물지 않으셨다. 나의 어지러운 생각 속으로, 진료실의 분주함 속으로, 그리고 눈물 짓던 자책의 자리로 친히 찾아오셨다. 그 만남 이후 나의 발걸음은 조금씩 달라졌다. ‘괜찮아진 뒤에’ 하나님께 가려던 교만을 버리고, ‘괜찮지 않은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은혜를 배웠다. 마음이 복잡한 날에는 “이 혼란함도 주님 앞에 선 저의 모습입니다”라고 정직하게 고백하곤 했다. 주님은 결코 “고쳐서 다시 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말씀으로 비추시고 은혜로 덮으시며, 나라는 사람 전체를 주님의 손길로 새롭게 빚어 가셨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교사로 부르신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준비된 어떤 ‘기능’만을 쓰시기 위함이 아니라, 연약함과 두려움까지도 안고 있는 ‘나라는 사람 전체’를 원하셨던 것이다. 돌아보니 내가 선교지로 보내심을 받은 것은 내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비로소 주님께 온전히 붙들린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나에게 ‘한의사’라는 정체성은 단순히 생계를 위한 직업이나 별개의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복음의 능력을 증거하기 위해 주님이 내게 맡겨 주신 구체적인 ‘사랑의 도구’다. 아픈 이들의 몸을 만지며 그들의 영혼까지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마음을 배우며, 내 손길을 통해 하나님의 치유와 위로가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나의 지식과 술기, 그리고 나의 부족함 마저도 주님은 자신의 도구로 삼아 선교의 현장에서 사용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내 안의 특출난 부분이 아니라, ‘나’라는 한 사람을 붙드시고 빚으시며 마침내 보내시는 분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완성된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빚어지고 있는 사람으로, 정리된 자가 아니라 그저 주님께 붙들린 자로 선교의 현장에 선다. 지금 이 순간에도 확신한다. 하나님은 오늘도 또 다른 누군가를, 삶의 파편이 아닌 ‘존재 전체’로 부르고 계심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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