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안을 쓰면서
김용출 목사(캐나다 신학교 이사장)
내 목회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던 경기도 광명시 서울 남부교회에서 은퇴가 가까워 오자 여기저기에서 이런저런 조언들이 있었다. 그것은 은퇴 후 시간 관리를 잘하라 그렇지 않으면 시름시름하다 1, 2년 안에 죽는 수가 있다고 하는 것이었다. 울산의 아무개 목사도 그렇고, 부산의 아무개 목사도 그렇고, 그런 분이 많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알아서 잘해 하는 무언의 압력 같기도 하고 은퇴에 대한 연민 같기도 하였다. 그러나 아직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이니 듣고만 있을 뿐, 무슨 대책을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현역에 있으면서는 항상 목회에 바쁘다보니 은퇴 후의 어떤 계획을 세울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은퇴를 했다. 막상 은퇴하려니 후련한 감정보다는 섭섭한 감정이 앞섰다. 오랜 세월 잡고 있던 일을 그만둔다는 것이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토론토 제일장로교회 담임목사 24년, 서울남부교회 담임목사 13년여, 부교역자 때의 목회를 포함, 43년이 넘는 세월을 목회에 매달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그런 세월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2010년 9월 하순, 높은 하늘이 가을을 알리는 듯 청명한 날이었다. 막상 인천공항을 떠날 때는 만감이 교차하였다. 많은 교인이 나와 마지막 작별을 하였다. 마치 어떤 유명 인사가 떠나는 것 같았다. 손에는 ‘김 목사님 사랑합니다. 잘 가세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오래오래 잊지 않겠습니다.’ 등의 플래카드들을 들고 있었다. 그분들과 일일이 악수하고 헤어져,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다가 공항 검색대로 향했다. 수속을 마치고 기내에 들어와 좌석에 앉았을 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은퇴식 직전 며칠 동안 긴장했던 감정들이 스르르 녹아내리는 기분이었다. 무슨 일일까. 결국 세월과 함께 모든 것은 놓아야 한다는 인식, 떠나야 한다는 필연,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명령이 나의 현실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많이도 다녔던 하늘길, 비행기만 타면 아내는 멀미했고 나는 잠을 청했다. 그렇게 해서 떠난 고국, 드디어 토론토 집, 모든 짐을 벗고 내가 여기에 돌아왔다고 나에게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조용한 집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우선은 무조건 세월에 내 몸을 맡기고 빈둥거리면서 한가하게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먹고 자고 쉬고 아무 일도 하지 않았다. 당장 만날 사람도 없었고 할 일도 없었다. 그렇게 서너 달이 지나갔다. 시간이 무료해지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은퇴하기 전, 그들이 나에게 말한 대로 시름시름 하다 천국으로 직행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 놀고 빈둥거리는 일이 힘들어졌다. 정신의 공백 상태가 오는 것 같았다. 잘못하면 정말 폐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자 무언가를 결단해야 했다. 그때쯤 캐나다 신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어떻게 그렇게 타이밍에 맞게 연락이 왔는지 신기했다. 강의를 좀 맡아 달라는 부탁이었다. 그동안 현역에 있을 때부터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L 학장의 부탁이었다. 처음에는 한 과목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한 학기에 두 과목을 맡았다. 일주일에 한두 번 강의에 나갔다. 그렇게 시작한 강의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강의안을 쓰는 시간이 많아지고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 역시 상당하게 되었다. 그때와 맞물려 은퇴 후 13개월을 미국 버팔로 새소망교회에서 임시 목사로 시무할 기회마저 있었다. 그 시간을 전후해서 세계선교교회는 나에게 한 달에 두 번씩 주일에 설교할 기회를 주었다. 그 설교도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 강의안 준비와 설교 준비로 시간을 보내다 보니 은퇴 후의 시간이 낭비가 아니라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가끔 쓰던 칼럼도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내는 데 보탬이 되었다. 그렇게 해서 모인 글들을 ‘사람사는 이야기’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하였다. 여러분이 재정적으로 도와주었다. 얼마 후에는 ‘자전적 목회 에세이’ 집을 출간했다. 이때는 순전히 내 주머니에서 비용이 나갔다. 다시 얼마 후 ‘목회의 실제’ 라는 목회 전문 서적을 출간하였다. 이때는 모 권사님이 거액의 출판비 전액을 부담해 주었다. 많이 고마웠다. 그렇게 해서 은퇴 후의 시간들이 흘러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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